‘앙숙’ 사우디-러시아, 석유 넘어 LNG서도 손 잡는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02.20 08:06

러 에너지 장관 "노바텍-아람코 에너지 각서 체결"
에너지 수요 급증하는 사우디, 가스 수입 늘리는 동시에 자국 생산량도 두 배로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툭’하면 이견 충돌로 목소리를 높이던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적과의 동침’에 나섰다.

미국의 셰일 붐이 산유국의 경계 대상으로 부상하면서 전통적 라이벌 관계에 있던 양국이 감산으로 힘을 합한 데 이어 액화천연가스(LNG)에서도 한 목소리를 낼 전망이다.

원유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 닷컴, 플래츠,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와 사우디는 LNG 부문에 대한 합의를 도출할 예정이며, 향후 3개월 안에 약 20억 달러 규모의 주요 에너지 프로젝트 세 개에 대한 마무리 작업을 완료할 방침이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에너지 장관은 지난 15일 소치에서 양해협력각서(MOU) 체결 논의 이후 개최된 기자회견에서 "최대 민간 천연가스 생산업체인 노바텍(Novatek PJSC)과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는 노바텍의 북극 LNG-2 프로젝트에 파트너 관계로 참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박 장관은 "오는 5월 열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 경제포럼 이전에 관련 논의와 계획이 구체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국 간 협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살만 빈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데 따른 결정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해 러시아 LNG 산업 확장을 정부 에너지 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할 파트너 모색에 나섰다. 러시아는 세계 1위의 천연가스 확인매장량 보유국이나, 수출량 면에서 카타르와 호주에 이어 3위에 머무르는 상황이다. 수출역량을 강화하고 북극 자원을 적극 개발해 현재 5% 미만인 글로벌 LNG 시장 점유율을 2020년 10%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한편 사우디는 급증하는 국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러시아에서부터 동부 아프리카, 미국에 이르기까지 안정적인 수입선을 확보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칼리드 알 팔리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지난 14일 수도 리야드에서 개최된 노박 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극 LNG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알팔리 장관은 지난 해 7월 노바텍으로부터 북극 LNG 프로젝트에 아람코가 참여해줄 것을 요청을 받았다고 밝히는 과정에서 노바텍 투자 계획이 아람코의 가스 포트폴리오 확대의 일환이라고 실수(?)로 언급한 바 있다.

▲지난 2016년 10월 오스트리아 빈 OPEC 본사에서 개최된 OPEC 회의에서 알렉산드르 러시아 에너지장관(왼쪽)과 칼리드 알 팔리 사우디 아라비아 석유장관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AP/연합)


알 팔리 장관에 따르면, 살만 국왕은 러시아와 사우디 간 감산 협력으로 원유시장이 반등에 성공한 이후 양국 간 에너지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최대 민간 천연가스 기업인 노바텍이 지난 해 말 가동을 개시한 야말 LNG 프로젝트에 이어 두 번째로 추진하는 200억 달러 규모의 북극 LNG-2 프로젝트는 2022년에서 2023년 사이 착수할 예정이다.

노바텍 측은 사우디에 재기화 설비를 건설하는 데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칼리드 알 팔리 장관에 따르면, 사우디는 향후 10년 간 자국 가스 생산량을 2배로 늘릴 계획이다. 알 팔리 장관은 지난 해 12월 인터뷰에서 러시아로부터 LNG를 구매하는 방안을 완전 배제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장 경제적인 선택지는 아니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노박 장관은 잠재적으로 러시아가 LNG를 수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아람코의 북극 LNG 프로젝트 참여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극 LNG-2외에 다른 프로젝트들도 여전히 협상 위에 올려져 있다"면서 "러시아는 이미 사우디에 원자로 2기 건설을 공식적으로 제안한 상태"라고 밝혔다.

알 팔리 장관은 사우디가 내년에 공식적인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번 발표에서 사우디의 LNG 프로젝트에 참여에 모든 초점이 맞춰지는 탓에 관심도가 밀렸으나, 러시아 최대 내륙 원유시추업체 유라시아 드릴링에 대한 투자도 주목할 만하다.

러시아 시추업체들은 최근 몇 년 간 사우디의 육상·해상 유전 프로젝트을 위한 입찰 경쟁에 참여했으나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심지어 푸틴이 지분을 갖고 있는 가스프롬 드릴링 조차도 사우디 시장에 진출하는 데 실패한 상황에서 아람코의 러 기업에 대한 투자는 러시아 시추업체의 꿈이 이뤄지는 역사적 순간이라는 평가다.

양국 정부는 아람코와 러 석유화학기업인 시부르(Sibur PJSC)가 주도하는 10억 달러 규모의 사우디 천연고무 프로젝트 관련 회담을 계속 진행 중이다. 이 사업에는 프랑스 석유기업 토탈과 국영 러시아 직접 투자 펀드도 참여한다. 2011년 설립된 러시아 직접 투자 펀드는 100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관리 및 투자하는 국부펀드다.

알 팔리 장관은 기후변화 정책 면에서도 힘을 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직접 투자 펀드 대표는 더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드미트리예프 대표는 "양국 정부가 협력 관계를 가속화하고 있다"며, "러시아 은행은 중국과 공동투자펀드를 조성해 아람코 IPO에 참여할 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일부 관측통들은 몇 가지 사안에서 사우디와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가 상이한 만큼 에너지 동맹이 견고하다고 보지는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가 중동 전체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서는 아사드 대통령 정권을 지원하고 있어 사우디와는 반대편에 서 있고 이라크의 쿠르드족 정부, 사우디의 앙숙인 이란과도 에너지·금융 협정을 맺고 있다.

한상희 기자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