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눈] 당신의 보도자료, 내 기사는 믿을 수 있는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05.18 16:54
이상훈

[에너지경제신문 이상훈 기자]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시장은 여러 논란이 끊이지 않고, 부정적인 여론도 있지만 분명 피할 수 없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자 산업 전반적으로 쓰일 수 있는 공유기술이다. 탈중앙화된 시스템은 보다 투명한 운영이 가능하게 해주며,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통해 소수가 지배구조를 좌지우지 하지 못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다만 아직 법적으로 온전히 정비되지 않았고 눈 먼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어 필연적으로 투기세력과 불법 다단계, 사기꾼들이 득세하는 시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들의 불확실한 사업에 투자금이 몰리는 데 언론이 얼마간 기여하고 있다.

요즘 언론의 모습은 이렇다. 직접 취재하고 작성하는 기사도 있지만 매일 양질의 취재기사를 몇 개씩 만들기는 어렵다. 이 때 기업의 홍보팀이 지원사격을 한다. ‘보도자료’를 배포해 자사의 제품이나 서비스 등이 긍정적으로 기사화될 수 있도록 돕는다. 문제는 이 보도자료가 하나의 완성된 ‘기사’ 형식으로 제공된다는 점이다. 기자들은 이 보도자료를 복사해서 붙여넣기(ctrl+c, ctrl+v) 하다시피 해서 송고, 하나의 기사를 뚝딱 완성한다. 물론 기자들이 불필요한 미사여구를 없애고 과도한 홍보문구들을 걸러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자료는 단 몇 분만에 기자의 이름(바이라인)이 붙어 기사로 노출된다.

기자의 경험상 이를 잘 활용하는 곳이 현재의 암호화폐 시장이다. 정말 많은 보도자료가 쏟아지는 가운데 암호화폐 관련 보도자료가 나날이 늘고 있다. 암호화폐 커뮤니티, 블록체인 기업, 신생 암호화폐, 거래소 등 출처도 다양하다. 기자들은 이 중 주목할 만한 보도자료를 골라 기사로 만든다. 문제는 이들의 보도자료를 100%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기업들이야 어느 정도 사실에 입각해 보도자료를 만들지만, 암호화폐 관련 보도자료들 중에는 근거가 불명확하거나,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내용이 상당수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ICO(암호화폐공개) 관련 보도자료라면, 해당 백서(White paper, 일종의 사업계획서)를 꼼꼼히 살펴보고 실제 실행 가능성이 있는지, 개발자들이 실제 이를 개발할 능력과 경험이 있는지 등등을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이를 하나하나 따지다가는 하루에 한 건도 기사화하기 어렵다.

빗썸의 팝체인 코인도 사실을 전해야 할 기자가 앞장서 보도해 사건을 키웠다. 14일 팝체인 코인의 보도자료가 다수의 매체를 통해 기사화됐고, 15일 빗썸 상장 공지가 올라온 후 문제점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결국 16일 빗썸은 팝체인 코인 상장을 늦추기로 결정했다. 과연 수많은 매체들은 팝체인 코인에 대해 알아보고 기사를 올렸을까? 아니다. 조회수를 강조하는 매체의 요구에 맞춰 빠르게 기사를 완성하는 데 치중했을 뿐이다. 이제라도 기자들 스스로 보도자료에 대해 보다 철저한 검증을 해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올린 보도자료가 자칫 범죄의 공모 증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상훈 기자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