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은행권 채용 풍속도...‘낙하산’ 막을까?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05.21 12:21

‘은행고시’ 부활은 환영, 채용비리는 ‘글세’


[에너지경제 신문 조아라 기자] "이런다고 비리가 없어지려나. 그래도 공부 열심히 하면 합격할 수 있으니까 기회는 더 생긴건가요?"

"저는 그래도 기회는 공정하게 주어진다고 생각해요. 뽑히는 건 또 모르겠지만."

"과연 투명성이 검증될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시험 잘 보면 입사할 기회는 주어지니까."

최근 한 취업 커뮤니티에 올라온 취업준비생들의 글이다. 이른바 ‘은행고시’가 다시 부활하면서 취업 커뮤니티에는 날마다 이 같은 글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논란이 된 채용비리 여파로 은행권은 채용 절차를 한층 강화했다. 가뜩이나 취업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터라 높아진 취업 문턱에 불만을 토로할 법도 하지만 취준생들은 오히려 이를 반기는 눈치다. 입사할 기회는 주어졌다는 것이다. 반면 채용비리 예방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현재 채용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곳은 우리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KB국민은행, BNK부산은행, DGB대구은행, JB광주은행 등이다.

채용절차를 가장 먼저 손 본 곳은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지난해까지 서류 전형을 거친 후 1차 면접과 인적성 검사, 2차 면접을 진행했다. 올해 공개채용은 1차 면접을 없애고 경제, 금융지식과 일반상식 문제로 대체해 10년 만에 필기시험을 되살렸다.

신한은행은 올해 상반기 채용부터 필기시험과 직무적합도 면접을 도입한다.

다음 달 초부터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국민은행은 필기전형은 그대로 유지하되 논술 전형 폐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은행권 채용비리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논란이 거세지는 만큼, 주관적 평가가 가능한 논술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필기시험 신설을 채용비리 근절을 위한 기본적인 과정이라고 본다. 한 4대 은행 관계자는 필기시험 도입에 대해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로 변화라는 큰 틀에서 평가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필기전형으로 채용비리를 줄이기는 역부족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먼저 필기전형의 부정행위 가능성 때문이다. 지난 28일 치러진 우리은행 필기시험에서 관리감독 부실로 부정행위가 잇따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입실 시간보다 25분이나 늦게 들어오고, 쉬는 시간에 소지품 사용이 명백히 금지돼 있음에도 휴대폰을 사용하는 응시자들이 있었지만 감독관의 제제가 없었다는 목격담이 인터넷을 통해 흘러나오면서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측은 "관리·감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사장 입실 건은 고사장을 찾지 못한 응시자가 시험 시작 시간인 50분에 시험을 볼 수 있도록 결정한 것이다. 그 외 부정행위로 판단한 건에 대해서는 채용 취소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쉬는 시간 휴대폰 사용 목격담에 대해서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와 함께 대졸 신입사원 공채에 대해서만 채용 절차를 강화한 탓에 지역 특별전형이 경영진의 채용비리 창구로 쓰일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과거 농협중앙회 감사 결과 경남지역 3곳에서 임원 자녀 채용 비리가 적발되기도 했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손녀가 채용비리 논란에 있는 것도 그렇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필기시험이 채용 비리를 근절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금융당국의 모범규준을 기다리는 입장이지만, 은행 측도 고민이 많은 부분"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또 다른 주요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역인제할당제와 같은 특별전형에서도 필기시험이 치러진다. 다만 경쟁력이 조금 낮다는 성격 때문에 서울에 비해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금융당국이 아직까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아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금융소비자원의 조남희 대표는 "채용전형 변화와 채용모범규준 도입은 슬로건에 불과하다"며 "채용비리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징계와 처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금융당국의 채용비리 대책의 내용은 채용모범규준이 유일하다. 연합기구인 은행연합회가 금융위원회에 보고한 은행 채용 절차 모범규준에는 면접 외부위원 참여, 임직원 자녀 가점제·추천제 등 일괄폐지, 성별·나이·학교 차별 금지, 부정 합격자 면직 또는 채용 취소 권고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소비자연맹의 강형구 금융국장은 "관련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비리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와 법률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은행은 채용목적에 맞게 내부 기준과 검증시스템을 마련하고 금융당국은 은행의 자율권을 줄이고 행정제재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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