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대병원서 숙환으로 별세..가족장 치르기로
1995년부터 회장 맡아...LG그룹 내 주요 업무 섭렵
LG디스플레이·LG화학 글로벌 1위..이통시장 판도 바꿔
▲20일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사진=연합뉴스) |
결단과 끈기의 리더십으로 LG전자, LG화학 등 수많은 글로벌 기업을 키우며 지금의 ‘LG그룹’을 만든 구본무 회장이 2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LG그룹에 따르면 구본무 회장은 이날 오전 9시 52분께 서울대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 수차례 뇌수술을 받으며 통원치료를 하다가 최근 상태가 악화되면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고인은 1년간 투병생활을 하는 가운데 연명 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장례도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만큼 가족장으로 치르고 공개도 하지 않기로 했다.
고인은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1995년부터 그룹 회장을 맡았다.
연세대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해 애쉬랜드대학과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각각 경영학을 전공한 뒤 귀국했다. 1975년 ㈜럭키에 입사하는 것으로 기업 활동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과장, 부장, 이사, 상무, 부사장 등의 직위를 차례로 거치면서 럭키와 금성사의 기획조정실 등 그룹 내 주요 회사의 영업, 심사, 수출, 기획업무 등을 섭렵하며 다양한 실무경력을 쌓았다.
특히 1985년 이후 그룹 기획조정실에서 전무와 부사장의 직책을 맡아 그룹경영 전반의 흐름을 익혔고, 1989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 수업을 본격화했다.
▲20일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사진은 2002년 5월 구 회장(가운데)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사진=연합뉴스) |
1989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돼 국내외 주요 인사들과 네트워킹을 강화하며 경제 및 경영 전반에 대해 논의하거나 의견을 청취하는 등 대외 활동의 보폭을 넓혔다.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만인 1995년 그룹의 회장직을 승계받았다.
이후 고인은 다양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그룹 핵심 사업인 전기·전자와 화학 사업은 물론 통신서비스, 자동차부품,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거듭했다.
정도 경영, 가치창조형 일등주의, 도전주의와 시장선도 등을 경영 이념으로 삼았고, 그룹 기술자문위원회와 해외사업추진위원회 등의 위원장 자격으로 LG그룹의 ‘기술개발력 제고’와 ‘세계화 추진’ 등 제2의 경영혁신을 주도적으로 준비했다.
고인은 평소 ‘글로벌 경영에서는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신규 사업은 시작하면 반드시 1등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매사에 ‘최고’를 추구했다.
GS, LS, LIG, LF 등을 계열 분리하고도 1994년 말 매출 30조원대에서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신장시켰다.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보면서 과감하게 일을 추진하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끝까지 도전해 결실을 보는 특유의 ‘끈기와 결단’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대내외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LG디스플레이의 대형 올레드(OLED) 사업, LG화학의 이차전지 사업을 글로벌 1위로 이끌고, 최소 3년 걸릴 것이라던 LTE 투자를 9개월 만에 끝내고 이동통신 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은 것도 이런 고인의 끈기와 결단이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고인은 주변의 반대에도 CI를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꿨다. 2005년 지주사 체제 구축과 계열 분리를 마무리하고 선포한 ‘LG 웨이(Way)’는 여전히 그룹 경영 활동의 기본이자 기업문화로 뿌리내려졌다.
야구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LG트윈스 구단주로 활동하면서 자율경영을 구단 운영에 접목해 ‘깨끗한 야구, 이기는 야구’를 표방, 창단 첫해인 1990년 시리즈에서 예상을 뒤엎고 우승하는 신화를 이뤄냈다.
이후 동생 구본준 부회장에게 구단주 자리를 물려줬지만 1년에 몇 차례는 직접 경기장을 방문하는 등 LG트윈스에 변함없는 애정을 보였다. 이후 구광모 LG전자 B2B사업본부 정보디스플레이(ID) 사업부장을 2004년 양자로 입적해 경영 수업을 받도록 했다.
구 회장은 평소 소탈하고 사교적인 성격에 낚시와 골프를 즐겼다. 새를 관찰하는 탐조(探鳥)에도 빠져 여의도 트윈타워 집무실에 망원경을 두고 한강 밤섬에 깃든 철새들을 관찰하곤 했다.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