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화 쇼크에 요동치는 터키 주식·채권 시장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08.14 16:51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환전소에서 텔러가 리라화를 들고 있다. (사진=AFP/연합)


터키 리라화가 중앙은행과 금융당국의 시장 안정화 조치에도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통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거론되던 금리 인상이 없었던데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미국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마켓워치 등에 따르면 이날 달러 대비 리라화 환율은 전일 대비 7.5% 오른 6.9535 리라를 기록 중이다. 환율 상승은 통화가치 하락을 뜻한다. 리라화 가치는 지난 10일 미국의 경제 제재에 대한 우려로 14% 폭락한 뒤 이날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터키 중앙은행(TCMB)은 13일 지급준비율 인하 등 리라화를 방어하기 위한 시장 안정화 조치를 내놨다. TCMB는 13일 모든 만기 조건에서 지준율을 250bp(1bp=0.01%포인트) 인하하고, 비핵심 외화 부채의 경우 400bp까지 낮추기로 했다. 금융 기관의 유동성 경색을 막기 위한 조치다. TCMB는 이를 통해 100억 리라(약 1조6600억원)와 90억 달러(약 10조2300억원)의 유동성이 금융 시스템에 공급될 것으로 예상했다.

TCMB는 "중앙은행은 시장의 가격 형성을 면밀히 감시하고 금융 안정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조치도 리라화 폭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3일 아시아 시장에서 사상 최고치인 7.2362 리라까지 치솟았던 환율은 중앙은행과 금융당국의 안정화 조치 발표 이후 다소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오후 들어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며 다시 환율이 달러당 7 리라 선에 근접했다. 리라화 가치는 연초 대비 44% 이상 하락한 상태다.

외환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주식과 채권 시장도 요동쳤다.

2년 만기 터키 국채 수익률은 94bp 상승한 25.74%까지 치솟았다. 채권 수익률 상승은 가격 하락을 뜻한다. 터키 5년 만기 국채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100bp나 급등해 537bp까지 치솟았다. 이는 터키 국채 1000만 달러를 보증하는데 53만7000 달러가 든다는 뜻이다. 터키 증시의 BIST 100 지수는 2.5%나 하락했다.

일각에서는 리라화 약세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도 TCMB가 너무 늦게 대응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금리 인상 없이 리라화 약세를 방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세르탄 카르긴 글로벌씨큐리티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에 "중앙은행의 조치가 (금융당국에 비해) 좀 더 포괄적이었지만 게임 체인저가 되진 않을 것 같다"며 "유동성 대책은 완충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전통적인 방식인 금리 인상이 없는 상황에서 리라를 완벽하게 방어하기엔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리라화 쇼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터키에 대한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2배로 인상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터키에 억류된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의 석방 협상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자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는 압박을 넣은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이 연일 미국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정면 대응하겠다는 태도를 나타내는 것은 금융 시장의 불안을 더욱 키우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3일 수도 앙카라 해외 공관장 회의에서 "미국은 등 뒤에서 칼을 찌르는 것을 추구한다"며 "한 쪽에서는 전략적 파트너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발밑에 총을 발사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세계 시스템에서 약자를 괴롭히는 가해자들이 피의 대가로 이룩한 우리의 성취를 난폭하게, 파렴치하게 침략하려는 것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터키는 경제적 지표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경제적 ‘포위’ 상태에 놓여 있다. 이 같은 공격을 이겨낼 것"이라고 공언했다.

M&G 인베스트먼트의 펀드매니저 클라우디아 칼리쉬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터키 정부는 현재 답변보다 더 많은 질문을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며 "에르도안 대통령이 계속 저항하는 것은 시장에 잘못된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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