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우진 칼럼] 가계부채 걱정은 기우였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10.14 10:00

백우진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주) 대표

백우진

당신은 키가 173㎝이고 몸무게는 74㎏이다. 어느 날 당신은 표준체중과 건강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된다. 그 기사에서 소개한 표준체중(㎏) 산식은 몸무게(m) x 몸무게(m) x 22이다. 이 산식에 따른 당신의 표준체중은 66㎏이다. 당신은 8㎏을 줄이기로 결심한다. 운동을 하면서 덜 먹는다. 당신은 평균적으로 한 달에 1㎏씩 8개월 동안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에도 요요현상을 피하기 위해 1년 동안 식사조절과 운동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당신은 다른 기사를 읽게 됐다. 그 기사는 표준체중을 계산하는 다른 산식을 소개했다. 그 산식은 간단히 키(㎝)에서 100을 뺀 숫자(㎏)가 표준체중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계산하니 그의 표준체중은 73㎏이다. 당신은 맥이 풀린다. 이 산식이 맞다면 지난 18개월 동안 당신은 삶의 재미를 희생하고 생활의 에너지도 없이 지낸 것이다.

국내 가계부채를 둘러싼 지난 몇 년 동안의 우려와 최근 분석보고서를 보고 이런 이야기를 떠올렸다. 최근 분석보고서란 가계부채 DB를 구축한 한국은행이 분석한 ‘가계부채 DB의 이해와 활용’이다. 이 자료는 한은의 조사통계월보(2018.9.)에 실렸다.

이 보고서를 보면 가계부채는 늘었지만 그 질은 개선됐다. 우선 가계부채 연체율은 2010년 말 3%대에서 올해 1분기 말 1.37%로 큰 폭 떨어졌다. 고신용자(1~3등급)에 대한 대출 비중은 2012년 1분기 39%에서 올해 1분기 57%로 높아졌다. 소득구간별 분포를 보면, ‘연간소득 5000만원 이상~8000만원 미만’ 대출자 비중은 같은 기간 26%에서 30%로 확대됐다. 또 은행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분할상환 대출 금액의 비중은 66%에서 82%로, 대출자 수 기준으로는 65%에서 81%로 개선됐다.

새삼 주목할 부분은 가계부채 연체율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인 시기다. 연체율은 가계부채의 질을 종합적·결과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부채 연체율은 2013년 이후 추세적으로 떨어졌다. 국내 가계부채 연체율은 올해 1분기 말에 1%대로 나타났고, 이는 미국의 4%대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국내은행의 원화 가계대출 연체율은 더 낮다. 이 연체율은 1분기 말 0.25%로 집계됐다. 이 연체율은 2016년 말과 2017년 말에도 0.2%대로 매우 낮게 유지됐다.

한은은 같은 자료에서 가계대출 연체율이 낮게 유지돼온 요인으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신용도 높은 차주 중심 대출을 들었다. 한은은 "주택담보대출이 확대된 2014~17년에 LTV는 지역, 금융업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40~70% 규제를 받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LTV는 국내에서 2000년대 초에 도입·시행돼왔다.

지난 몇 년 동안 가계대출을 우려한 사람들은 집값 하락과 금리 상승이라는 두 변수를 주로 걱정했다. 주택가격 하락과 금리 상승, 대출금 회수, 연체율 상승, 부실채권 증가와 신용경색, 경기침체의 시나리오가 심각하게 논의됐다.

나는 이 시나리오에 동의하지 않았다. 큰 전제인 주택가격 하락의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했고, 설령 집값이 떨어지더라도 오래 전 설치된 LTV라는 안전판이 제 역할을 하리라고 분석했다. 그래서 2016년 11월에 ‘가계부채 시한폭탄은 불발탄’이라는 칼럼을 썼다. 이후에도 나는 이 전망을 견지했다.

연체율 하락은 LTV 외에 최근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추가로 시행된 방안들이 효과를 낸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2년 전 내가 내놓은 분석과 전망이 유효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는 가계대출에 관한 한, 지난 2년 동안 지나치게 걱정하면서 지냈다고 볼 수 있다. 건전성이 유지되는데도 가계대출을 너무 옥죄여 온 것이다. 건강 염려증은 건강을 해치지는 않지만 활력을 떨어뜨린다. 가계부채 염려증도 비슷한 부작용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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