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에 담긴 사회적 의미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11.13 14:49

이호영 서강대 종교연구소 연구원



영국 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일대기를 그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가 중년 남성들의 심장을 저격하며 극장에 아재들이 넘쳐나고 있다. 심지어는 까까머리 시절로 돌아가 영화를 보며 노래를 따라하고 닮지도 않은 배우의 연기에 감격의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격동의 1990과 2000년대를 이끌어 온 철혈의 주역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영화는 ‘전설’이라는 말도 아닌 뻥으로 시작한다. 웃기지마라! 퀸 따위가 무슨 전설이라는 말인가. 퀸이 날리던 1970~1980년대로 돌아가 보자. 보헤미안 랩소디가 담긴 앨범 ‘A Night At The Opera’를 발매한 연도는 1975년이다. 여기서 ‘5’가 중요하다. 데뷔에서 1위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물론 첫 판은 1973년이다.

퀸은 동내 클럽을 전전하던 밴드였다. 어찌해서 눈에 들어 천신만고 끝에 낸 싱글은 발매하고 다섯 달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라디오에 한번 나왔다고 한다. 심지어 앨범에 대한 리뷰조차 나오지 않았을 지경이다. 너무 돈이 없어 중고품 상점을 열었다고 한다. 공전의 걸작 Queen II에 오면 그래도 형편이 조금 나아진다. 롤링스톤지에 5점 만점에 2.5점이란 비참한 점수를 주지만 싱글도 차트에 진입하며 여기저기 오프닝 밴드 노릇을 한다. 쥐구멍에도 볕든다고 1974년에 ‘Sheer Heart Attack’에서야 겨우 ‘킬러 퀸(Killer Queen)’으로 영국차트 2위에 오른다. 물론 롤링 스톤지 지는 3점을 주면서 사지 말라고 권했다. 다음이 공전의 히트를 한 4집이다. 이 앨범으로 퀸은 정상에 오르지만 영화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 사실은 아니다. 1970~80년대 한국에서나 영국에서나 퀸은 별로였다. 록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퀸은 레드 제플린과 딥퍼플 다음다음다음이었다. 게다가 밥 딜런이나 핑크 플로이드처럼 사회의식을 노래하는 것도 아닌 주제에 이상하리만치 금지곡이 많았다. 앨범 ‘게임’ 이전엔 좋게 나온 평론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는 보헤미안 랩소디에 열광한다.

1970년대 당시 록뮤직의 판단기준은 ‘진정성(Authenticity)’이었고 록뮤직 최고 권위지였던 롤링 스톤스지의 공식 주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퀸은 시작점부터 비껴난다. 블루스를 기본으로 심각한 음악을 하던 밴드와 여러모로 달랐던 것이다. 진정성 없는 이상한 판타지, 말도 안 되는 가사와 음악형식, 말랑하며 녹녹한 기타음색, 결정적으로 근저에 깔린 퇴폐적인 느낌이 진정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메탈도 록도 팝도 아니다. 한마디로 심각한 음악만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퀸은 듣보잡에 사차원이자 정체성을 상실한 놀자판으로 보였다. 죽을 듯 심각한 음악만 하는 매미가 아닌 설렁설렁 놀러 다니는 퇴폐 베짱이로 취급받았다. 퀸의 고백대로 그들은 록음악의 방황아, 즉 보헤미안이었던 것이다.

한국은 퀸을 좋아할 조건을 갖추지 못한 곳이다. 금지곡 하면 박정희다. 그의 피는 야만적인 유신색깔이라 문화를 대하면 몸에서 저절로 두드러기가 돋았다. 진지한 음악도 반대했지만 ‘퇴폐성 음악’은 더 못 봐주었다. 그래서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는 금지곡이었다. 퀸은 섹스, 마약, 살인 및 정치인에 대한 야유를 빌미로 온통 금지곡이었다. 대표 주자가 바로 우리의 가슴을 두드리는 보헤미안 랩소디다. 살인과 탈옥 그리고 악마주의가 이유다. 심지어는 노래 10곡이 실린 판에 4곡이 금지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40-50대 개미 아재들이 퀸에 열광한다. 재미없던 삶에 대한 회한일수도 있고, 더 이상 진지함이 보증수표인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아니면 자기 안의 미친 퀸(Queen은 여왕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당시 대학생들 속어로 ‘또라이’라는 의미다.)이란 또라이를 발견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재가 되어 퇴폐적으로 놀기에 늦었더라도 퀸에 열광하며 자신을 찾았으니(Tonight I’m gonna have myself) 반가운 일이다. 이제는 진지 그만 파고 바람 부는 대로 맞길(Anyway the wind blows)일이다. 그러면 퀸은 즐겁게 해줄게(Let me entertain you)라고 노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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