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설치는 엘리엇, 잠 설치는 현대차그룹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11.14 09:16

▲현대기아차 양재 본사. (사진=현대기아자동차)


[에너지경제신문=여헌우 기자] 한동안 잠잠했던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현대자동차그룹에 초과자본금의 주주 환원 등을 요청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8월 현대모비스를 둘로 쪼개 각각 현대차·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라고 주장한 데 이어 또 다시 도 넘은 요구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 발표가 임박한 만큼 앞으로 엘리엇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전날(현지시간)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등 그룹 이사진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초과자본금의 주주 환원을 제안했다. 엘리엇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자동차 컨설팅사 콘웨이 맥켄지의 ‘독립 분석보고서’를 공유하며 자신들의 논리에 힘을 보탰다.

보고서는 현대차그룹이 심각한 초과자본 상태라고 진단하고 있다. 현대차는 8조~10조 원, 현대모비스는 4조~6조 원 등이다. 과거 잉여현금흐름의 불투명한 운용으로 상당한 자본이 비영업용 자산에 묶여 있다는 게 골자다.

보고서는 "주주환원 수준이 업계 기준에 지속해서 미달됐다"며 "현금흐름에 대해 일관되지 못한 보고 방식으로 인해 현대차그룹의 사업으로 발생하는 실제 현금흐름이 왜곡되거나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엘리엇은 이를 인용하며 "기존 (지배구조) 개편안이 철회되고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차그룹은 기업구조 개편을 진전시키기 위한 어떠한 실질적인 소통도 하지 않고 있다"며 각 계열사 이사회에 독립적인 사외이사 추가 선임을 요구했다.

▲헤지펀드 엘리엇을 이끄는 폴 싱어 (사진=연합/EPA)


또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주들에게 초과자본금을 환원하고 현저히 저평가된 현재 가치를 고려해 자사주 매입 방안을 우선적으로 검토하라고 촉구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엘리엇 및 다른 주주들과 협업해야 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엘리엇은 또 이 밖에 모든 비핵심 자산에 대한 전략적인 검토를 하라고 덧붙였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엘리엇의 움직임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그룹은 지난 5월 현대모비스의 모듈·AS부품 사업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한 이후 ‘지배회사 체재’를 꾸린다는 구상이었지만 엘리엇 등의 반대 탓에 포기했다. 이후 자동차 판매가 정체된 가운데 신흥국 통화불안, 미국-중국간 무역전쟁 등의 여파로 실적이 급락했다. 주가도 동반 하락해 주요 계열사들이 신저가를 새로 쓰고 있다.

새로운 지배구조 개편안이 올해 안에 발표되기 힘들 수도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 엘리엇이 시장을 시끄럽게 만들 경우 심사숙고하고 있는 내부에서도 조급함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KB증권은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에 초과자본금 주주 환원 등을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한 것을 두고 "잠재적인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들을 설득하는 작업"이라고 해석했다. KB증권 강성진 연구원은 "이번에 엘리엇이 전달한 서한의 내용은 새롭지 않다"며 "과도한 보유현금을 주주에게 환원하라는 기존 주장을 컨설팅 업체 분석을 통해 재차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대차그룹이 새로운 지배구조 변경안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주주들을 설득함으로써 향후 있을 수 있는 주총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노력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강 연구원은 그룹의 새 개편안이 현대글로비스를 중심으로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현대차그룹은 논란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 변화를 준비할 것"이라며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 주주총회를 최소화하고 주주구성이 유리한 현대글로비스 중심으로 지배구조 변화를 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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