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가 최근 수소충전소 설치, DTC 유전체분석을 통한 맞춤형 건강증진 서비스, 디지털 사이니지 버스광고, 전기차 충전용 과금형 콘센트 사업 등 잇따라 규제 특례를 승인했다.
혁신형 신사업에 대해 일명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물론, 이 번 규제 샌드박스가 국가경제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고 성급한 예단을 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여 문재인 정부가 시장의 흐름을 이해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이번 규제 특례를 단행하게 된 근거 법률은 2011년에 제정된 산업융합촉진법이다.
이 법은 "산업융합의 기반을 조성하고 산업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국민경제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이다.
국민경제 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개선에 도움이 되는 신사업에 대해서는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해서라도 육성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의 진행과정이다.
입력이 되면 출력도 되어야 하는데 출력하기까지 험난한 과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규제 특례를 승인한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의 구조적 특성이 지적될 수 있다.
위원회 구조의 특성상 추진력이 미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규제 특례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관련 부처들이 이에 협조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위원회가 이를 조정할 수 있는 콘트롤 타워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각 관계부처의 인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기업 스스로 나서서 협조를 구하는 경우 청탁금지법의 대상이 되어 적폐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수소충전소와 관련해서는 문화재심의위원회의 심의와 국토계획법령의 예외적용 결정 과정에서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인한 적폐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유전체 분석을 통한 맞춤형 건강증진 서비스에 대한 실증특례와 관련해서도 기존 12개 외에 고혈압, 뇌졸중, 대장암, 위암, 파킨슨병 등 13개 질환에 대한 유전자 검사 실증을 해야 하는데 보건복지부가 이를 실증하는 과정에서 적폐논란이 발생할 여지가 많다.
디지털 사이니지 버스광고에 대한 실증특례 역시 옥외광고물법과 빛공해방지법의 적용을 배제하여야 하는데 담당공무원이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앱 기반 전기차 충전용 과금형 콘센트 임시허가와 관련해서도 이 콘센트를 사용하면 아파트 주차장 등에서 전기차를 충전하면서 사용한 공용 전기에 대해 요금을 납부하면 편리하지만 전기사업법상 담당 공무원에게는 그 적부판단을 맡기는 것이 과도할 수 있다.
최근 카풀 관련해서 택시기사들이 분신을 하는 등 강력히 저항함으로써 사업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신산업의 탄생은 기존 산업에 대한 위협을 동반하기 때문에 이러한 이해관계자간 충돌은 불가피하다.
규제샌드박스 역시 국가경제적 관점에서 이를 조정하고 추진하는 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적 장치가 보완되지 않으면 사실상 전시행정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물론, 산업융합촉진법상 ‘특례심의위원회’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소속으로 설치되기 때문에 장관이 콘트롤 타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로 경제부총리, 총리, 대통령이라는 상위기관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소신을 가지고 국가경제를 위한 결단과 실행을 감당하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대통령 직속으로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한 바 있다.
그러나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소한 청탁금지법 제5조 제2항 1호에 ‘산업융합촉진법’ 규정이라도 신설하는 성의는 보여야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