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실패 맛본 ‘마이클 병주 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3.22 00:10

민병무 금융증권 에디터

민병무 데스크칼럼(작은사진)

▲민병무 금융증권 에디터

[에너지경제신문=민병무 기자] ‘마이클 병주 김’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때는 지난 2000년이다. 그는 1999년 칼라일그룹에 입사해 1년만에 한미은행을 인수하는 빅딜을 성사시켰다. 한미은행을 3000억원에 사들여 3년 만에 7000억원을 받고 되팔아, 칼라일 사상 최대의 수익을 달성하며 ‘미존감’을 드러냈다. 인수합병(M&A) 시장의 새로운 스타탄생이다.

김병주 회장은 자신감이 생겼다. 투자하겠다는 전주(錢主)도 여럿 나타났다. 그래서 2005년 독립했다. 칼라일에서 한솥밥 먹던 아시아계 동료를 이끌고 나와 MBK파트너스를 세웠다. 자신의 영문명 첫 글자 세개를 따 회사명을 지은 것은 ‘내 이름을 걸고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엄청난 실탄을 장착한 MBK는 거침이 없었다. 전성시대를 활짝 열었다. 시장에 나온 ‘먹잇감’을 쓸어 담으며 사모펀드(PEF) 시장의 큰손이 됐다. 참여하지 않은 빅딜이 없을 정도로 왕성한 식욕을 자랑했다. 한미캐피탈을 시작으로 씨앤엠(현 딜라이브), 금호렌터카(현 KT렌탈), 웅진코웨이, 네파, ING생명(현 오렌지라이프), 홈플러스, 두산공작기계 등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다. 한동안 투자금 회수에 애를 먹었는데, 지난해 오렌지라이프와 웅진코웨이를 성공적으로 매각해 냉철한 승부사의 면모를 보여줬다.

김 회장의 기업 사냥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매물로 나온 롯데그룹 금융계열사(카드·손해보험·캐피탈)와 넥슨 인수전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막대한 자본력이 동원되지 않고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베팅을 술술 잘도 해낸다. 그는 대체로 경기 흐름을 덜 타는 내수기업 가운데 안정적 수익을 내는 소비재 기업을 사들인다. 소비재 기업의 경우 현금 창출력이 좋아 대부분의 사모펀드들이 비슷한 전략을 쓰고 있지만, MBK는 김 회장의 불도저 정신이 더해져 빛을 발하고 있다.

김 회장의 이력은 드라마틱하다. 1963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10대 때 홀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자녀 교육에 열정적이었던 아버지의 결단이었다. 책읽기를 좋아해 문학도를 꿈꿨고, 명문 사립대 해버포드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골드만삭스에 들어가 2년을 근무한 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다시 골드만삭스에 재입사해 4년 6개월을 일했다. 1994년 골드만삭스 재직 시절에 포항제철이 뉴욕거래소에 상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밤 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사는 시절이었다. 코피를 흘린 것 외에는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고 스스로 말할 만큼 독기로 중무장했다. 비록 힘들긴 했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을 누가 움직이고, 그 속에서 어떻게 돈을 버는 지 제대로 배웠다고 고백했다.

1997년 살로만스미스바니로 자리를 옮겨 3년 일했고,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엔 한국 정부의 40억 달러 외평채 발행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유학 시절 박태준 전 총리의 넷째딸을 만나 결혼했다. ‘장인의 후광 효과’도 성공에 큰 도움을 줬다.

하지만 끝까지 ‘꽃길’만 걸을 수 없는 게 사업 아닌가. 최근 야심차게 추진한 홈플러스리츠 상장이 좌절되면서 김 회장의 화려한 스토리에 흠집이 났다. 1조7000억원의 자금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겨우 8000억원에 그쳐 IPO는 일단 스톱됐다. 이에 따라 7조3000억원에 이르는 투자금 회수에 차질을 빚는 굴욕을 맛봤다. 사업 모델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은 기관투자가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대출을 해준 은행권도 ‘위험의 시그널’ 아닌가 긴장하고 있다.

돈 벌기가 갈수록 힘들어지니 김 회장은 고민이 깊다. 혼자만 잘 나가는 시절은 사실상 끝났다. 지금은 한앤컴퍼니, IMMPE 등 라이벌도 수두룩하다. 블루오션이 어느새 레드오션이 됐다. 집 근처에 가끔 이용하는 홈플러스가 2개 있다. 언론계에서 일하다 보니 롯데카드·손보·캐피탈, 그리고 넥슨의 새 주인이 누가 될지 늘 관심을 갖는다. 싫든 좋든 ‘김병주의 MBK 영향권’에 놓여 있는 셈이다. 흥하고 쇠하는 자본주의 사장경제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 있다.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펴야 내 주머니의 돈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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