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3대 산유국이 기대하는 유가 수준의 차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4.17 12:57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너지산업연구본부장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는 3대 산유국으로 세계 전체 원유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이른다. 그런데 최근 이들 주요 산유국이 기대하는 원유가격이 서로 달라서 향후 유가 전망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즉 미국과 사우디, 러시아가 기대하는 국제 원유가격의 수준 차이는 자칫하면 가격 변동성의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3대 산유국 중 사우디가 가장 높은 유가를 선호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올해 사우디의 재정균형 유가를 각각 배럴당 80∼85달러, 배럴당 73달러로 분석하고 있다. 이에 비추어 사우디는 국제 유가가 브렌트유 기준으로 적어도 70달러 위에서 유지되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가 재정수지의 균형을 꾀하고 경제개혁 추진을 위해 요구되는 최소한의 원유판매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유가 수준이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비전 2030’으로 명명된 경제개혁 계획을 통해 석유 의존적 경제구조에서 탈피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 석유시장의 브렌트유 가격은 지난해 연말 50달러까지 하락했다가 반등해 올해 4월 첫째 주에 70달러를 기록했다. 사우디가 기대하는 최저 유가 수준에 도달한 셈이다.

반면에 미국은 사우디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유가를 선호하는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브렌트유 가격이 적어도 배럴당 70달러 아래에 머물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해부터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를 비롯한 OPEC(석유수출국기구) 산유국들의 감산 합의를 비난하며 증산을 요구한 시점에서 잘 나타난다. 트럼프는 지난 1년간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트위터를 통해 OPEC을 비난했는데, 이중 최근 세 차례는 유가가 70달러를 넘지 않은 시점이었다. 트럼프가 저유가를 선호하는 것은 내년에 실시되는 대선에서 재선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미국 대선에서 자국 내 휘발유 가격의 안정은 늘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비록 텍사스 주 등 석유생산 지역이 트럼프가 속한 공화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이지만 미국 대선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곳은 주로 석유소비 지역이다.

러시아도 사우디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유가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이터 통신은 러시아의 올해 재정균형 유가를 배럴당 55달러로 보도한 바 있다. 러시아는 비OPEC 최대의 원유 수출국이지만 유가가 과도하게 상승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고유가로 인해 미국 등 여타 산유국의 생산이 증가하면 자국의 시장점유율이 잠식되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 루블화는 그 어느 통화보다도 민감하게 유가 상승에 따라 가치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즉 유가의 과도한 상승으로 루블화가 평가 절상되면 러시아 원유판매수입의 실질 가치가 하락하고 러시아의 또 다른 주요 수출품인 곡물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3대 산유국이 기대하는 유가 수준의 차이는 상호 간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로 하여금 증산을 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사우디는 지난 3월 기준으로 자국에 할당된 감산량의 두 배가 넘는 물량을 감산했다. 그리고 미국 의회가 OPEC의 카르텔 행위를 규제하려는 법안을 추진하자 사우디는 원유거래 화폐로 미국 달러화 대신 유로화나 위안화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한편 사우디와 러시아는 2017년부터 견고한 감산 공조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들 간의 관계에서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사우디는 올 6월 말로 종료되는 감산 기간을 연말까지 연장하자고 제안했지만 러시아는 이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최근의 국제 유가 상승세는 3대 산유국 중 사우디가 석유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유가가 지금의 배럴당 70달러에서 추가로 상승할 경우 힘의 중심이 미국과 러시아 쪽으로 급속히 이동하면서 유가는 하락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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