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이슈] 이번엔 희토류?...새로운 대미 '압박 카드' 꺼낸 중국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5.21 13:20

美, 인텔 등 화웨이와 거래중단 명령

시진핑, 희토류 수출 중단 카드 만지작

美 희토류 수입 66%가 중국산

中 수출 중단시 첨단산업 타격 불가피

전문가 "양측 기업들이 가장 큰 피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AP/연합)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갈수록 고조되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의 희토류 수출 중단을 회심의 카드로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정부의 제재로 구글, 인텔, 퀄컴 등 주요 IT 기업들이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한 만큼 희토류 수출을 중단해 미국을 코너길로 몰겠다는 복안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의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게 되면 미국과 중국 모두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21일 신화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전일 장시성의 영구 자성 물질을 연구, 개발, 생산하는 진리(金力)영자과학기술 유한책임회사를 참관했다. 시 주석은 현장에서 현지 기업의 경영 현황을 듣고 희토류 산업 발전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사는 희토류와 희소 금속을 연구 개발하고 판매하는 업체로, 생산한 제품들은 풍력 발전, 신재생에너지, 자동차, 로봇과 스마트 제조 영업에서 많이 활용된다.

시 주석은 이날 미·중 무역협상의 총책인 류허(劉鶴) 부총리를 직접 대동하고 시찰에 나섰다. 이날 시 주석이 시찰한 회사에는 ‘국제 경제력을 갖춘 희토류 및 희소 금속 산업단지를 만들자’는 표어가 대문짝만하게 내걸려 있었다.

특히 이달 들어 미중 무역전쟁 분위기가 한층 고조된 가운데 처음으로 진행한 지방시찰이 ‘희토류 생산지’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되면서 미국의 파상적인 압박에 중국이 수세에 몰린 가운데 미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희토류가 중국의 손에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행보로 풀이된다. 앞서 중국은 2010년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열도를 앞두고 일본과 갈등이 심해지자 희토류를 무기 삼아 일본을 압박한 바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관영언론이 무역전쟁에 대한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류 부총리를 대동한 지방 시찰에서 희토류 생산시설을 둘러봤다는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은 무역전쟁에 대한 중국의 강경한 대응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발표한 '관세폭탄' 목록을 통해서도 희토류가 무역전쟁에서 미국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점이 시사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3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30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관세대상에 휴대전화, 랩톱, 태블릿 컴퓨터 등을 새로 포함했지만, 희토류, 약품 원료 등은 제외했다. 로이터통신은 USTR이 관세대상에서 제외한 희토류와 특정 의료 제품들은 미국 내 전기자동차, 국방, 의약품 산업 부문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또한 희토류가 미국의 약점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진찬룽(金燦榮)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미국의 주요 수출품인 하이엔드 반도체의 원료인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면 미국 반도체 기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이 자국의 희토류를 채굴할 수도 있지만 중국의 희토류 생산 기업만큼 고품질, 대량 생산을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 소식통도 "시 주석이 미중 협상의 책임자인 류허 부총리를 데리고 희토류 관련 시찰을 했다는 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중국을 너무 압박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는 시 주석의 시찰에 대해 확대 해석하지 말라고 부인했다. 그러면서 표면적으로 미국과 중국 간 평등한 무역협력을 강조했다. 혹여나 이같은 해석들이 트럼프 행정부와의 무역분쟁에서 변수가 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행보로 읽힌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국내 산업 정책 시찰에 대해 모두 정확하게 해석하기를 희망하며 지나친 연상을 해서는 안된다"면서 "중미 경제 무역 협력은 반드시 상호 존중 및 평등, 상호 이익의 기초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 미국 희토류 수입의 66%가 중국산…‘희토류가 뭐길래’

▲희토류 광석(사진=위키피디아)


그렇다면 희토류는 대체 어떤 광물이길래 시 주석의 시찰만으로도 이렇게 화제가 되는 걸까. 희토류는 ‘희소한 광물’의 종류라는 뜻으로, 고성능 영구자석 원료인 네오디뮴 등의 17개 원소를 일컫는다. 이들 17개 광물은 자성이 강하거나 광학적인 특질이 있어서 전자제품의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전기차, 전자제품, 군사장비, 반도체 등 첨단기술 산업에 있어서 필수적인 원자재로 꼽힌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만일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중단할 경우 미국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수 있다. 만일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금지한다면 미국은 남은 10% 가량의 희토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희토류 수입은 산업계 수요에 따라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미국의 희토류 의존도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약 80%에 달한다. 현재 미국은 전체 희토류 수입의 약 66%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전체 희토류 수출 가운데 30%를 차지하는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희토류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상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관세 대상에서 이를 제외한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12만톤에 해당되는 희토류를 채굴하는 등 세계 생산량의 72%를 차지할 정도로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누리고 있다. 국가별 매장량을 보면 중국은 4400만톤으로 전 세계의 37.9%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 브라질·베트남(2200만톤·18.9%), 러시아(1200만톤·10.3%), 인도(690만톤·5.9%), 호주(340만톤·2.9%), 미국(140만톤·1.2%) 등이 뒤를 이었다.

미국도 희토류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는 있다. 그러나 미국의 생산량과 매장량은 중국에 비해 미미하다. 미국 지질조사국이 지난해 국가별 희토류 생산량을 집계한 현황에 따르면 미국의 희토류 생산량은 1만5000톤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9%에 불과했다. 호주는 2만톤(12%)을 생산해 미국을 앞섰고, 미얀마(5000톤·3%), 인도(1800톤·1.1%) 순이었다.


◇ 희토류 수출 금지시 파장은..."양측 기업들이 가장 큰 피해" 목소리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우)(사진=AP/연합)


만일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게 되면 미중 무역분쟁의 전세(戰勢)는 단번에 중국 쪽으로 기울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을 대체할 다른 수입국을 찾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선진국들은 희토류가 있어도 채굴을 꺼리고 있다. 다른 광물과 뒤섞여 채굴 후 별도의 추출과 가공 비용이 필요할 뿐더러 광산 환경규제도 엄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중국산 희토류 수입이 줄어들면 미국이 부족분을 채울 수는 있겠지만, 생산량을 늘리는 데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더 나아가 "미국이 부족분을 채우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이다"며 "중국이 희토류 생산과 공급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간만큼은 미국의 첨단산업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고 진단했다.

미국 시장분석 매체 ‘반얀힐 퍼블리싱’의 경제학자이자 선임 리서치 애널리스트 테드 바우먼도 "중국이 (희토류에 대한) 수출금지를 단행할 경우 트럼프도 이에 굴복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향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만일 중국이 수출을 중단하면 앞으로 다른 나라들이 희토류를 거래하는데 있어서 신뢰할 수 없는 교역 상대국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 틈을 노려 다른 국가들이 희토류 같은 광물 개발에 속도를 낼 가능성도 있다. 미국 투자업체 어워예 캐피털의 조던 어워예 부사장도 이에 대해 "중국이 미국과의 거래를 중단하면 베트남, 멕시코 등의 기타 국가들이 이를 기회 삼에 희토류 개발에 몰두할 것이다"며 "미국은 기타 국가로부터 희토류를 수입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이 자체적으로 희토류를 생산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의 화학업체인 블루라인과 호주의 광산업체인 라이너스는 합작법인으로 미국에 희토류 분리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블루라인과 라이너스가 미국에 희토류 분리공장을 세우게 되면 이는 미국의 유일한 희토류 분리공장이 될 전망이다. 양사는 텍사스주(州) 혼도에 공장을 짓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이 고조되면서 희토류 등 원자재 분야까지 보복 수단으로 활용할 경우 결국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양국의 교역을 담당하는 기업이다. 실제 중국이 그간 미국의 관세 폭탄에도 직접적인 맞대응을 자제했던 것도 개별 기업들이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A.T. 커니의 소비자 부문 수석연구원 조한 곳트는 "중국은 상대 국가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동시에 개별 기업에 타격을 줄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있다"며 "그러나 무역전쟁이 격화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기업에 대한) 자제력을 발휘해 왔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미국도 마찬가지로 관세의 범위를 넘어 기업체에 대한 압력을 가할 수 있다"며 "최근 미국이 화웨이에 대해 거래중지 명령을 내린 것에서도 이같은 사실들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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