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유라의 눈] 강성부 펀드의 한진칼 지분매입, 그리고 아버지의 유언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5.22 08:16

나유라 금융증권부 기자


"11월 14일 발생한 강성부 펀드, KCGI(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가 한진칼 지분 9%를 매입한 것은 한국형 주주행동주의의 서막이다."(2018년 11월 16일 이베스트투자증권 리포트)

지난해 11월,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KCGI(일명 강성부 펀드)가 한진칼 지분 9%를 보유하며 2대 주주로 올라서자 증권가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KCGI가 해당 내용을 공시한 다음날 한진칼 주가는 장 초반 2만945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고, 기존에 한진칼 주식을 갖고 있던 투자자들은 환호했다.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편법행위, 갑질논란 등 오너리스크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총대를 메고 나선 기관투자자는 사실상 강성부 펀드가 유일했다. 증권가에서는 KCGI가 우리나라 최초의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성공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호평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현재, 당시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면서 한진칼을 비롯한 한진그룹 주가는 연일 출렁거렸다. 조양호 전 회장이 별세하고, 한진그룹 총수는 조원태 회장이 됐다. 보통 6개월이면 해당 기업에 대한 이슈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질 법도 한데 한진그룹은 자의든 타의든 그럴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바로 잊을만 하면 꾸준히 한진그룹 지분을 매입하는 KCGI 때문이다.

KCGI의 지분 매입 시점을 가만히 지켜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KCGI가 펀드를 등록하고, 지분을 매입한 시점이 한진그룹에 이벤트가 터진 날과 같다는 것이다. 일례로 KCGI 산하 투자목적회사인 그레이스홀딩스가 한진칼 지분을 14.98%로 늘렸다고 발표한 지난달 24일, 한진칼은 이사회를 열고 사내이사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한진칼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했다. KCGI는 지분을 14.98%로 늘리기 위해 한 달 전인 3월 26일 ‘케이씨지아이제1호의4 사모투자 합자회사’를 등록했는데, 이날은 대한항공과 조 회장 일가의 운명이 걸린, 대한항공 주총이 열리기 하루 전이었다.  

우연은 또 있다. KCGI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케이씨지아이제1호의5사모투자’ 설립등기를 완료한 이달 15일은 공정위가 조원태 한진칼 회장을 총수(동일인)로 지정한 날이다.

물론 이것만 갖고는 KCGI가 일부러 특정 날에 한진칼 지분을 매입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바로 KCGI가 한진그룹에 원하는 것은 처음 지분을 매입한 작년 11월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것이다. KCGI는 한진그룹이 처한 상황의 본질에 대해 "단순 갑질뿐만 아니라 대주주의 사적 이익추구와 경영실패가 맞물리며 주주, 채권자, 직원, 고객의 회사에 대한 신용이 무너졌다"고 평가하며 경영 투명성 강화 등 신뢰회복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계속해서 촉구하고 있다.

이 모든 점을 종합해보면 KCGI가 한진그룹에 중요한 이벤트가 있는 날, 혹은 그 직전에 지분을 매입한 것도 회사의 본질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신호’일 가능성도 있다. 조원태 회장은 실제 아버지인 고 조양호 회장이 유언으로 "가족들끼리 잘 협력해서, 사이 좋게 이끌어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하기도 했다. 조 회장의 유언에는 단순히 남매가 ‘사이 좋은’ 걸 넘어서 지금까지 한진그룹을 일으킨 모든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해달라는 의미도 담겼을 것이다.

잠시 눈길을 외부로 돌려보자. KCGI는 주주들의 기대감을 등에 업고 6개월간 흔들림 없이 꾸준히 그 길을 걷고 있다. KCGI의 지금까지 행보를 쭉 지켜보면 단순 시세차익이 목적인 사모펀드와는 결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제는 오너일가가 달라질 차례다. KCGI가 "주주, 직원, 고객의 회사에 대한 신용이 무너졌다"고 지적한 이유는 무엇인지, 가면까지 쓰고 집회에 참여해야 했던 직원들의 속마음은 어땠을 지 알아내는 것은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언제나 정답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정말 명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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