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韓 신산업 '진입규제'…이집트·중국보다 못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5.22 11:51

54개국 중 38위…세계 1위 의료기기 국내 출시도 못하고 해외로

대한상의, 기득권 저항·포지티브 규제·소극행정 ‘3대 덫’ 제시

▲우리나라의 진입규제 수준이 글로벌기업가정신모니터(GEM)가 조사한 54개국 중 38위로 꼴찌 수준으로 평가됐다.


# 국내 스타트업 A사는 스마트폰앱으로 심방세동을 측정해 의사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진단기기를 개발했다. 유럽심장학회 학술대회에서 1위로 뽑힐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지녔지만 국내 출시는 못한 채 유럽시장을 공략 중이다. 생체 정보를 의사에게 전달하는 기능이 원격의료에 해당돼 국내법상 불법이기 때문이다. 

# B사는 스마트체온계와 스마트폰 앱을 연동한 영유아 건강관리 서비스앱을 개발했다. 체온, 발열, 구토, 반점 등 증상을 입력하면 의사가 대처법을 알려주는 서비스다. 그러나 의사가 스마트폰앱을 통해 대처법을 알려주는 것은 의료법 위반이라 국내서는 사업을 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진입규제 수준이 글로벌기업가정신모니터(GEM)가 조사한 54개국 중 38위로 꼴찌 수준으로 평가됐다. 미국과 일본, 중국은 물론 이집트보다도 낮은 순위다. 특히 의료, 바이오, ICT, 금융 등 주요 신산업이 문제로, 이들의 진입을 막는 3가지 덫으로 ‘기득권 저항’ ‘포지티브 규제’ ‘소극행정’이 꼽혔다.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는 22일 ‘한국 신산업 대표규제 사례’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하고, 국내 진입규제 장벽이 높은 3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 기득권 저항

기득권 저항과 관련해 보고서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나와도 기존 사업자가 반대하면 신산업은 허용되지 않고, 신규사업자는 시장에 진입조차 못하는 실정"이라며 △원격의료 금지 △차량공유 금지 △각종 전문자격사 저항 등을 예로 들었다. 기득권의 반대가 가장 심한 분야는 의료분야로, 미국·유럽·중국 등에서는 원격의료가 전면 허용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의료계의 반대에 막혀 시범사업 시행만 십수년째다. 

대한상의는 "진입장벽을 낮춰 혁신의 속도를 높이는 경쟁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기득권 저항에 의해 진입 자체를 막거나, 엄격한 요건을 설정해 진입장벽을 높게 설정하고 있다"며 "원격의료법만 하더라도 기득권층의 반대와 의료민영화에 대한 우려로 20년째 시범사업만 진행 중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강영철 한양대 특임교수는 "규제개혁이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이해관계자 등 기득권의 반발이 심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의지도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개혁여부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정한 뒤에 이해관계자들의 이익관계 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포지티브 규제

세계 주요 국가들은 네거티브 방식으로 혁신활동을 보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정해진 것 외에는 할 수 없는 포지티브 규제로 혁신활동이 봉쇄되고 있다. DTC(Direct-to-consumer) 유전자검사 항목 규제가 대표적이다. 국내는 현행법상 체지방, 탈모 등과 관련한 12개 항목만 허용하다 규제샌드박스 심사를 통해 13개 항목을 추가로 허용했다. 반면 영국, 중국은 DTC 검사 항목을 따로 제한하지 않고, 미국도 검사 항목을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김정욱 KDI 규제센터장은 "최근 정부가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검사항목 확대를 위한 규제특례를 허용했지만 여전히 경쟁국에 비해선 상당히 부족하다"며 "건별 심사를 통해 샌드박스에서 승인 받은 사업만 가능하도록 한 현재의 포지티브 방식으론 명확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혁신과 숙박공유도 포지티브 장벽에 갇혀 있다. 핀테크업체 관계자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새로운 펀드상품을 개발했으나 법으로 정해진 펀드만 판매할 수 있는 규제 때문에 상품출시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소극행정

공무원들의 소극행정 역시 국내 규제장벽의 핵심 요인이다. 대한상의는 "기업인들이 느끼기에는 해외공무원들은 규제완화를 돈 안드는 가장 효과적인 투자라고 보는 반면, 우리나라 공무원은 규제강화를 돈 안드는 가장 확실한 대책이라고 보는 인식차가 존재한다"면서 "기업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해도 각종 행정편의주의, 규제의존증으로 인한 공무원들의 소극적 태도 앞에 번번이 무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에너지업체는 2016년 친환경 설비를 도입하려고 지자체에 관련 업종 허가를 신청했다가 수차례 반려됐다. 하지만 끈질기게 허가를 신청해 겨우 일부 사업만 가능한 반쪽 허가를 받았다. 허가범위 확대를 계속 건의해도 지자체는 지역민원을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고, 담당자도 해마다 바뀌는 바람에 4년째 제자리걸음인 상황이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적극행정이 제도화됐으나 문제발생 이후의 소명과 면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공무원들이 문제되는 규제를 스스로 발견해 없앨 수 있는 인센티브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경제신문 김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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