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왼쪽)과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오른쪽). |
국내 항공업계 3세 경영인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이 혹독한 데뷔전을 치르고 있다. 부친의 뒤를 이어 그룹을 경영하게 됐지만 굵직한 현안·고민들이 쌓여 있어 부담이 큰 상태다. 조원태 회장은 그룹 경영권을 노리는 KCGI 등으로부터 대한항공을 지켜내야 한다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박세창 사장은 정든 아시아나항공을 떠나보내고 그룹을 재건하는 작업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처지다.
13일 재계와 항공 업계 등에 따르면 조원태 회장은 그룹 경영권을 두고 행동주의 펀드와 정면 승부를 벌이는 동시에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당장 KCGI가 그룹 지주사 한진칼 지분을 15.98%까지 확보한 게 조 회장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선친인 고 조양호 전 회장이 갑작스레 별세하며 지분정리 작업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진칼 지분은 조양호 전 회장이 17.84%를 보유하고 있고 조원태 회장(2.34%),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2.31%), 조현민 한진칼 전무(2.30%)가 각각 3% 미만의 지분을 들고 있다.
‘물컵 갑질’로 지탄을 받은 조현민 전무를 1년 2개월여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시킨 것도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한 조원태 회장의 결단이라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자칫 형제간 다툼 등이 일어날 경우 KCGI에 승기를 뺏길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조 전무는 꾸준히 그룹 경영 복귀 의사를 내비쳐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부터 한진칼 전무 겸 정석기업 부사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사회공헌 활동을 기획하고 신사업을 발굴하는 등 그룹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이에 따른 후폭풍 역시 조 회장이 감당해야 한다는 평가다. 조 전무의 때 이른 경영 복귀 소식에 업계·소비자들은 비난의 화살을 연이어 날리고 있다. 대한항공 노조와 조종사 노조, 진에어 노조 등도 잇달아 성명을 내고 조현민 전무의 복귀에 우려를 표명했다. 진에어의 경우 외국인인 조 전무가 등기이사로 올라가 있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상태다. 고객들 역시 조 전무의 복귀에 쓴소리를 건네고 있는 배경이다.
조 회장은 또 상속세 재원 마련이라는 현실적인 고민도 안고 있다. 조양호 전 회장이 남긴 주식의 상속세는 약 26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진칼, 대한항공, 한진 등 주요 계열사의 상속일 전후 각 2개월의 주식 평균 종가를 집계한 결과다.
박세창 사장은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대한항공과 국내 항공 업계를 양분하던 아시아나항공을 다른 기업에 넘겨야 하는 처지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지난 해 9월 그룹 내 주요 계열사인 아시아나IDT 대표로 자리를 옮기며 본격적으로 경영 보폭을 넓혔다. 그간 그룹에서 큰 그림만 그려온 만큼 핵심 계열사에서 성과를 내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전 회장이 지난 3월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 만큼 향후 그룹 재건 작업은 박 사장이 주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박 사장은 박 전 회장과 함께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금호고속 지분 50.7%를 들고 있다.
새로운 분야에서 자신의 경영 성과를 다시 입증해야한다는 점은 박 사장의 숙제다. 아시아나항공이 ‘통매각’될 경우 박 사장은 금호고속 또는 금호산업으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보인다. 그간 운수·건설업과 인연을 맺은 적이 없는 만큼 새로운 데뷔 무대를 치러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박 사장은 2002년 아시아나항공 차장으로 입사해 금호타이어, 금호아시아나그룹 등에서 일해 왔다.
업계에서는 박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대신 겸손한 자세로 경영 수업을 다시 받을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금호고속·산업 등에서 바로 사장 역할을 수행하기 쉽지 않은 만큼 건설·운수업에 대한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얘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3세 경영인인 조원태 회장과 박세창 사장 모두 그동안 뚜렷한 경영 성과를 내거나 이름을 날리지는 못했다"며 "조 회장은 최근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등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등 정신이 없지만 박 사장은 일단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마무리한 뒤 움직일 수 있어 시간이 있다는 점이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에너지경제신문=여헌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