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영화 ‘기생충’이 불편한 이유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6.17 13:11

맹문재 시인·안양대학교 교수


지난 5월 30일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열흘 만에 700만 명의 관객을 극장에 불러 모았을 만큼 화제이다. 앞서 5월 25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황금종려상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한국 영화 100년사에서 세계 최고의 영화상을 받았기에 후광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이미 칸 국제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감독상),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심사위원 대상) 및 ‘박쥐’(심사위원상), 이창동 감독의 ‘밀양’(여우주연상) 및 ‘시’(각본상) 등이 수상한 적이 있기 때문에 비록 ‘기생충’이 더 큰 상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흥행의 전적인 요인으로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영화의 내용이나 주제 의식, 구성, 촬영, 음악, 배우들의 연기 등 종합적인 면이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변변한 벌이 없이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기택(송광호 분)의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명문대에 다니고 있는 친구의 주선으로 고액 과외 자리를 얻게 되면서 시작된다. 기우가 여동생 기정(박소담 분)의 도움으로 명문대 재학증명서를 위조해 글로벌 아이티(IT) 기업 박 사장(이선균 분) 딸의 과외 선생으로 취직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정이 박 사장의 아들 미술 선생으로, 기택이 박 사장의 운전기사로, 기택의 아내인 충숙(장혜진 분)이 가사도우미로 취직한다. 기생충(기택, 기우, 기정, 충숙)이 신분을 속인 채 숙주(박 사장 집)에 달라붙어 살아가는 모습이 희극적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기택의 가족은 사기극을 벌이면서도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행동이라고 합리화까지 한다. 그들에게 돈은 인생 가치의 전부이다. 그리하여 박 사장의 가족이 자신들에게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고 혐오하거나 정해 놓은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인간 차별을 할 때도 절대적으로 비위를 맞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 집 근처에 방뇨하는 술 취한 사람들에게는 정신 차리라고 물을 끼얹을 정도로 적대시한다.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굽실거리면서도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야박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이중적인 태도에 관객들은 반지하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그들의 몸에 배인 퀴퀴한 냄새를 맡는 것처럼 마음이 불편하다.

영화는 박 사장의 식구들이 캠핑을 떠난 날 기택의 가족이 마치 자신들의 보금자리라도 된 듯 저택에 모여 즐겁게 술판을 벌이는 저녁에 뜻밖의 사건으로 전개된다. 기택의 가족이 일자리를 차지하려고 몰아낸 가사도우미 문광(이정은 분)이 찾아왔고, 그녀의 남편이 지하실 비밀 공간에 오랫동안 숨어 살아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 충격적인 상황에서도 두 가족은 저마다의 생존 기회를 차지하려고 부딪치고, 끝내 살인 사건을 부른다. 그들에게는 살기 위한 몸부림만 있을 뿐 인간의 윤리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기생충은 우리 사회의 상층에 속하는 사람들과 하층에 속하는 사람들 간의 계급 차이와 그것으로 인한 갈등을 그리고 있다. 하층민들의 이중성을 통해 상층민들의 이중성을,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갑질 문화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는 체제를 전복하는 지향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하층민들이 기생할 수 있는 조건마저 상실하고 마는 비극적인 상황을 제시해주고 있다. 가까스로 살아난 기우는 박 사장 집의 지하실에 숨어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린다. 돈을 벌어 박 사장의 집을 구입하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기우는 돈을 벌겠다고 다짐하는데, 관객들은 그의 꿈에 불편함을 갖는다. 결과적으로 박 사장을 살해한 범죄자를 돕는 일이기 때문이고, 또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우가 처한 입지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희망 사항이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생물체의 몸 안이나 밖에 붙어살면서 영양분을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하층민들의 삶을 여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관객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붙어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처지와 맞닥뜨린다. 그들이 처한 삶의 조건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 샐러리맨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 또한 기생충처럼 살고 있음을 인정하고,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를 포기한 현실을 떠올리며 부끄러워한다. 그렇기에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불편한 마음을 가진 채 극장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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