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시각] 반도체 핵심소재 국산화 위한 '한국판 알바니 컨소시엄'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7.19 10:11

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25년 전인 1999년 삼성 반도체가 망하는 2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로 일본이 한국 견제를 위해 반도체 장비의 한국 수출을 금지하는 것을 검토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의 수출 금지 시나리오가 현실화됐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고 안타깝다고도 했다. 문제는 그런데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막상 일본의 수출규제가 현실화 되자 양국 정상 간의 정치적 외교적 해법, 심지어는 미국을 통한 우회적 압력 해법 등 백가쟁명식이다. 그러나 모두 단기적 땜질 방식 해법에 지나지 않고 지속가능한 해법은 전무하다. 정부가 반도체 핵심소재의 국산화를 중장기 대응책으로 내놨지만, 준비 작업에도 착수하지 못한 업계와 엇박자만 내고 있다. 정부의 환경규제가 원인이라는 주장에서부터 대형 반도체업체들이 당장의 원가절감에만 집중해 국내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외면했으며, 소규모 부품·소재 제작사도 대기업 낙수효과만 바라보다 경쟁국에 기술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등 "내 탓이오" 가 아니라 "네 탓이오"만을 외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2월 반도체 소재 국산화율을 오는 2022년까지 70%로 끌어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5년간 총 2조원 규모의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최근에 하나도 진척된 것이 없다. 그 원인은 한국 산업계의 기술력에 있지 않다. 한국 산업의 기술력은 일본을 추월하고 있다. 한국은 조선 산업 전쟁에서 현대중공업이 미쓰비시 중공업을 대파했고 제철산업에서 포스코가 신일본제철에 승리를 쟁취했다. 정유부문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JX홀딩스를 추월한지 오래됐다. 건설업에서도 2010년을 기점으로 삼성물산이 다이와하우스를 제쳤다. 전자산업에서의 일본의 패배는 비참하다. 삼성전자가 소니를 완전히 석권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고지가 자동차 산업과 정밀화학이다.

그러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본을 석권한 한국의 기술력이 오직 반도체 소재 분야의 정밀화학에서 취약점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반도체 공정의 속성에 기인한다. 반도체 산업 소재 개발은 한국 기업의 역량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문제는 국내 반도체 소재·장비업체가 개발한 기술을 실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지 성능을 점검할 수 있는 테스트 베드가 문제다. 완전히 검증이 되지 않은 소재·장비를 반도체 업체에서 쓸 수는 없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매출은 75조원이다. 대부분의 소재는 웨이퍼를 제외하고 1000억원 안팎이다. 그렇지만 모든 소재 하나하나가 최종 제품의 품질에 절대적이다. 여기서 검증되지 않은 1000억원 안팎의 소재가 잘못되어 전체 75조원의 매출에 손상을 줄 수는 없다. 공장장의 입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신소재나 국산화로 전체 매출에 영향을 주었다면 자리보전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는 복지부동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현상유지가 최선이며 신소재의 도입이나 국산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반도체 가공 공정에 들어가는 소재·장비를 개발할 수 있는 (민관) 공동 연구소인 IBM과 뉴욕 주가 결성한 알바니 컨소시엄이다. 소재·장비 업체와 실수요 반도체 업체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관·산·학·연의 컨소시엄을 만들어 국산화 신소재의 도입에 따른 반도체 업체의 위험을 분산시키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국산화의 품질불량에 따른 위험 분산의 제조물 책임 보험을 정부가 부담하는 대안도 필요하다. 한국 산업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한 번도 진적이 없다. 금 모으기의 국민 역량 집중으로 외환위기를 벗어나듯 금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정밀화학 산업의 대일본 독립의 발판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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