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억지 경쟁유발 정책이 만들어낸 비극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8.21 14:28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에교협 공동대표


작년 12월 10일 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고(故) 김용균 씨는 당초 발전소의 해명과 달리 자신의 실수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하청업체의 작업지시와 발전소의 안전수칙이 작업자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구성된 특조위의 결론이다. 하청업체가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을 착취하고, 안전을 위협하도록 만든 민영화의 철회와 전력산업 수직통합을 재발방지 대책으로 내놓았다.

멀쩡했던 한전을 한수원과 5개 발전사로 분사시키고, 전력거래소를 신설해서 한전의 내부 조직으로도 충분히 감당하던 업무를 떠맡겼던 것이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핵심이었다. 한전의 전력 생산과 송배전을 독점하던 체제를 깨뜨려서 억지 경쟁을 유발시키면 발전사들이 각자 효율화를 추구해서 그 혜택이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알량한 신자유주의 전문가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였다.

이번 특조위의 결론이 아니더라도 신자유주의적 경쟁유발 정책은 전력산업의 현실을 철저하게 외면한 비현실적인 억지였다. 대규모 기간설비가 반드시 필요한 전력산업의 독과점 체제는 좁은 국토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었던 사실이 간과되었다. 잘못된 경쟁은 불필요한 낭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고려하지 못했다. 실제로 전력산업 구조개편으로 분사된 발전사들은 비정규직의 임금 착취와 위험의 외주화로 어렵사리 생존하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민간 발전사들도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해 헉헉거리고 있다.

억지 경쟁을 앞세운 신자유주의가 망쳐놓은 에너지 정책은 전력산업 구조개편만이 아니다. 국민의 정부에서 신재생 에너지 육성을 핑계로 무작정 밀어붙였던 발전차액제도도 형편없는 패착이었다. 정부의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태양광 시장을 구축해 놓으면 신재생 에너지가 마구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당초의 기대는 순진한 환상이었다. 정부가 기대했던 시장은 태양광 마피아들에게 점령당해 버렸고, 반세기 동안 애써 가꿔놓은 숲은 값싼 중국산 태양광 패널로 뒤덮혀 버렸다.

이명박 정부의 알뜰주유소도 경쟁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적 환상에 만들어낸 흉물이다. 정부가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휘발유·경유를 싼 값에 공급하면 소비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이 회계사 경력을 자랑하던 당시 지경부 장관의 어쭙잖은 착각이었다. 지경부가 국가기간 산업인 에너지 산업 육성이라는 중책을 내던져버리고 ‘기름값이 묘하다’고 믿는 대통령을 위한 충성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정부의 무차별적인 시장개입으로 수천 명의 영세 주유소업자들이 생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해외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고, 석유시장을 감시해야 할 공공기관이 본업을 포기하고 휘발유·경유의 대량구매에 매달리게 되었다. 농민을 위해 일해야 할 농협과 고속도로 유지관리를 담당한 도로공사가 주유소를 운영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공교육도 선무당급 신자유주의에 직격탄을 맞았다. 전국의 모든 학생을 오로지 1등을 향한 무한경쟁의 늪에 빠뜨려버린 문민정부의 5·31교육개혁도 신자유주의를 맹신하던 엉터리 교육학자와 철학자들이 만들어놓은 괴물이었다. 법무부 장관 지명자의 딸에게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의 탄탄대로를 열어준 ‘외고’와 내신 성적 위주의 ‘수시’ 전형도 노동경제학 전공의 교육부 장관의 소신이었다. 교육감이 교육부의 정책 결정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나서도록 만든 ‘자사고’도 경쟁 유발을 위해 밀어붙인 학교 다양화 정책의 산물이다.

경쟁이 자유시장을 살아 움직이도록 해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경쟁이 모든 사회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다. 불합리한 경쟁이 사회적 낭비와 갈등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된 명백한 진실이다. 어쨌든 권위주의 시대에나 가능했던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 개입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감시·관리자의 역할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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