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제헌국회 회의록 읽기를 권함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8.2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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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식 법무법인 에이펙스 파트너 변호사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는 2017년부터 제헌국회 회의록 정기 강독회를 진행하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강독회원들은 현재 1948년 9월8일 제60차 회의록(제1회)의 강독까지 완료했다.

제헌국회 회의록은 단순한 회의록이 아니다. 대한제국과 같은 군주국(君主國)이 아닌, 공화국(共和國) 대한민국과 그 국민의 탄생 및 기원을 밝히는 중요한 사료다. 역사학자 리처드 B. 모리스가 "비교할 수 없는 헌법 설명"이라고 극찬했던 연방주의자 논설과 비교될 수 있다.

제헌국회 회의록은 강독회원 모두를 제헌국회 회의장으로 소환시킨다. 거기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건설’ 과정을 라이브로 지켜봤다.

우리는 이승만 임시 의장의 요청으로 ‘기도’로 시작했던 제1차 회의의 감격을 함께 느꼈다. 자유와 민권으로 대표되는 공화국 헌법인 ‘대한민국 헌법’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국호가 ‘대한민국’으로 결정되는 과정,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침략적 전쟁은 부인한다’, ‘종교의 자유는 보장된다’와 같은 유명한 조문이 들어오는 과정, 제헌헌법에만 있었다는 ‘노동자의 이익 균점권’ 조문이 도입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지금도 문제되는, 내각제냐 대통령제냐의 권력구조에 관한 논쟁을 헌법조문으로 녹이는 과정도 지켜봤다. 헌법 한 조문 한조문 모두, 후대 자손들을 향한 제헌의회 의원들의 소망과 애정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돼 필자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다.

‘대한민국 30년’과 ‘단기(단군기원)’라는 연호가 경쟁했던 상황, 태극기가 국기로 정해지는 과정, 요즘 다시 논란이 되는 안익태 작곡 애국가에 대해 국가 출범에 맞춰 명확하게 법률로 제정하려는 논의가 있었던 상황도 함께 지켜봤다. 이승만 의장이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과정과 독립운동가로만 알고 있는 이범석 장군이 초대 국무총리에 임명되는 과정도 함께 했다. 신익희 의장이 ‘조선민족의 친구’로 소개한 미군정 하지중장이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통일된 자유민주국가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연설했던 순간, 미국 국적을 가진 서재필 박사가 1948년 9월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을 때 제헌의원들이 만류하면서 국적이탈과 한국 거주를 해줄 것을 결의했던 순간도 함께 했다. 비록 파리 유엔총회에 초청도 받지 않았지만, ‘정부승인’이라는 외교 안건을 상정 결의하여야 한다는 특명을 가지고 장면 특사 일행이 파견되는 순간도 함께 했다.

요즘 문제되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기원이라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보다도 훨씬 앞선 조약, 즉, 미국으로부터 적산(敵産)을 포함한 미군정하의 관리재산을 이양 받는 최초의 대한민국과 미국의 재정 조약이 체결되는 1948년 9월도 지켜보고 있다. 특히 이 조약 제5조는 ‘미군정청이 법령 제33호에 따라 귀속한 일본인 공유 또는 사유재산에 관해 이미 실시한 처리를 승인, 인준함’이라고 초안이 돼 있어, 미국이 미군정청 하의 귀속재산처리를 전쟁 하의 개인재산 몰수를 금지한 국제법 위반 문제로 인식해 그 처리에 고심하고 있었음을 재확인시켜주는 것이라 새롭다.

제헌의회 회의록을 읽으면,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들인 제헌의회 의원들의 고민과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할 수 있는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된다. ‘물을 마실 때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말처럼 제헌국회 회의록이야 말로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이 어떻게 탄생한 것인가를 날 것 그대로 볼 수 있다. 우리 국민과 우리의 자손들인 아이들 모두가 아무쪼록 이 제헌국회 회의록을 꼭 한번 읽어보고 건국의 아버지들의 기쁨과 고민을 함께 하면서, 그들이 진정 바랐던 ‘자유롭고 안전하고 풍요로운 나라’를 만드는 우리 모두의 양식으로 삼았으면 한다.

허재영 기자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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