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피의사실공표죄, 훈령 아닌 법률로 보완해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11.12 10:01

조민근 변호사

▲조민근 안심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기고=조민근 안심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형법 제126조는 피의사실공표죄를 규정하고 있다. ‘검찰, 경찰, 기타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해 지득한 피의 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 같은 규정을 형식적으로 해석하면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당하는 사람에 대한 피의사실, 즉 혐의를 법원에 공소를 제기하기 전에 널리 알릴 때에는 모두 피의사실공표죄가 성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그의 가족에 대해 검찰 관계자의 피의사실공표죄가 성립하는지 논란이 있는 것도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형법의 해석은 법조문을 형식적으로 살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피의사실공표죄에 관해서 대법원은 국민의 알권리와 헌법 제27조의 피의자, 피고인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 ‘형사소송법’의 수사상 인권 존중 규정 등 내용이 모두 조화될 수 있게 해석하고 있다.

공표 목적의 공익성과 공표 내용의 공공성, 공표의 필요성, 공표된 피의사실의 객관성과 정확성, 공표 절차와 형식, 그 표현 방법, 피의사실 공표로 인해 생기는 피침해 이익의 성질·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는 의혹들이 발생하는 경우 수사 과정에서 피의사실 공표 의혹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사건에서도 문제됐고, 최근에는 장제원 의원의 아들의 사례까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논쟁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은 물론 국가의 공익에도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에서 수사기관이 기본적인 브리핑조차 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브리핑을 할 때 형법상 피의사실공표라는 범죄가 규정돼 있어 온전히 정보를 전달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쟁의 대상이 되는 사안에서는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 피의사실공표에 해당한다거나, 그렇지 않다는 등 논란이 항상 불거진다.

대법원이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해 확립된 판례를 두고 있지만, 범죄 성립과 처벌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판례를 형성해 처벌 범위를 확정할 것이 아니라 온전한 법률 규정으로 위법성이 조각되는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죄형법정주의라는 형법의 사명을 정확히 실천하는 길이다. 어차피 피의사실 공표를 형식적으로 모두 처벌할 수 없다면 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에 있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위법성을 조각시키는 것과 유사한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법무부는 인권보호 수사준칙이라는 훈령을 통해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언론사의 과당 경쟁으로 인한 오보 방지 등 중대한 공익상의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피의사실을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법률에서 범죄로 규정한 것을 그보다 훨씬 낮은 단계의 훈령을 통해 처벌 범위를 좁히는 것으로 보인다. 체계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범죄가 되는 피의사실 공표의 범위를 국민의 알권리를 고려해 현실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음은 분명해보인다. 그러나 일개 훈령으로 이를 보충할 것이 아니라 법률 보완을 통해 처벌 범위를 확정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해보인다. 그것이 진정한 법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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