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내 '원유수요 정점'… '2600조원' 석유공룡 사업비는 어디로?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7.06.28 14:19

▲미국 몬태나 주 중남부 빌링스에 위치한 엑손모빌 빌링스 정유소. (사진=AP/연합)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엑손모빌과 셰브론 등 대형 석유기업들이 수천 조원을 필요없는 데 낭비하게 될 위험에 쳐했다. 10년 안에 원유 수요가 정점에 이른다는 가정 아래서다. 

경제분석가들이 설립한 영국 런던의 비정부기구(NGO)인 ‘탄소 추적자 이니셔티브(Carbon Tracker Initiative)’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파리협정에 따라 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시나리오를 적용할 경우 원유 수요는 2025년에 정점을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 "10년 안에 원유 수요 정점…예정된 프로젝트 중 2조 3천억 달러 쓸모 없어질 수" 

보고서의 핵심은 현재 글로벌 원유 산업이 계획하고 있는 잠재적 지출 중 3분의 1, 약 2조3000억 달러 가량이 필요하지 않게된다는 것이다. 즉, 향후 10년 안에 원유 수요가 정점에 달하면 막대한 자금을 버리게 된다는 게 골자인 셈이다. 

물론 피크 수요에 대한 취약성은 회사마다 다르다. ‘탄소추적자’가 전세계 69개의 석유가스 기업을 조사한 결과, 잠재적 지출이 리스크에 노출된 범위는 10%에서 60%까지 갈렸다. 이는 2020년대 중반 원유 수요가 정점을 찍을 경우, 현재 산정한 지출 계획 중 10%∼60% 가량이 버리는 돈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수요 감소로 그만큼의 원유가 필요없어지기 때문이다. 

▲2012년∼2024년 석유기업들의 잠재적 지출 비용. 빨강=실제, 파랑=파리협정 시나리오 적용 시, 빨강선=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인위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단위=10억 달러, 표=탄소추적자)


보고서는 "고립된 자산" 이론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재생에너지의 확산 때문이든, 기후변화 규제 때문이든 아니면 양쪽 다든 원유 수요 정점이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오면서 많은 양의 원유가 채굴되지 않은 채 남아있게 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특히, 엑손모빌이나 쉘, 셰브론보다 규모가 작은 사우스웨스턴 에너지나 아파치 같은 중견기업들이 원유 수요 피크 시나리오 적용 시 가장 취약할 것으로 전망됐다. 업스트림(유전 탐사&개발) CAPEX 중 60∼70%가 남아돌 것이란 분석이다. 

보고서는 대형기업들 중에선 엑손모빌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을 것이라면서 2025년까지 투자가 예정된 비용 중 절반 가량이 불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쉘, 에니, 셰브론 등 다른 기업들의 사정은 약간 낫지만 큰 차이는 없을 전망이다. 3사는 CAPEX 중 약 30∼40%를 필요없는 유전 프로젝트에 지출할 것으로 집계됐다. 


◇ "세일도 생존 불가능…민간기업 피해 더 커" 

고비용 프로젝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금 창출이 빠르고 유연성이 뛰어난 셰일 등 일부 프로젝트들 역시 경제적으로 생존이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셰일 시추는 저유가 시기를 통과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비용을 낮췄으나, 2020년대에 수요가 피크에 달한다는 가정 아래에서는 대부분의 고비용 프로젝트가 생존능력을 상실한다는 것. 

‘탄소추적자’는 2016년 수준에서 유전탐사에 대한 지출이 더 증가하지 않아야 한다고 결론 짓는다. 이는 세계 석유산업이 지난 2014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유가 급락 여파에 지출을 대대적으로 줄인 상태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지난 3년 사이 원유업계에서는 상당수의 프로젝트가 취소됐고, 탐사와 시추는 대폭 줄었으며, 신규 미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개발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석유기업들의 지출은 아직 2014년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지만, ‘탄소추적자’는 오늘날 수준에서 지출이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들이 계획한대로 CAPEX를 확대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잠재적 원유가스생산량 중 3분의 2는 민간 부문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같은 국영석유기업들이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경쟁을 벌일 경우, 대형 석유기업들이 진행하는 고비용 프로젝트의 수익성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오일샌드나 심해유전 같은 대형 프로젝트들은 수십 년 이상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보고서의 전망대로 수요가 2020년대에 정점에 도달한다면, 처음에 설정한 수명만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대형 프로젝트는 초기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에 기업이 입을 재정적 손실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민간 석유가스 기업은 장기 전략을 세울 때 국영기업보다 더 투명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강조한다. ‘탄소추적자’는 "기업들이 이미 고비용 프로젝트를 보류하기로 결정했을 수도 있으나, 주주들에게 파리협정 시나리오를 적용한 지출 계획을 납득시키기 위해선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일부 투자자들은 석유 가스 자산 유지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불필요한 CAPEX가 많은 기업일 수록 장기 성장 전략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특히, 파리협정 시나리오를 적용한 기업들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유리하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 "2도 제한 시나리오 적용 시 재정적 리스크 막대할 듯" 

사실 ‘피크 수요’는 최근까지도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평가절하됐던 시나리오다. 그러나 이제 환경운동가들 뿐 아니라 석유기업들조차도 원유수요가 빠른 시간 안에 둔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수요 둔화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글로벌 원유 수요 증가세를 이끌던 중국과 인도의 원유 수요가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최근 주요 아시아 국가들의 원유 수요 감소가 199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중국의 5월 원유 수입량은 약 9백만 배럴로 3분기에 걸쳐 정제투입량이 감소하고 있으며, 인도는 화폐개혁(demonetization)에 의한 소비 감소로 4∼5월에 수입물량이 4.2% 감소했다.  

고령화로 원유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일본의 4월 원유 수입물량은 정점을 찍었던 2005년 대비 41%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물론 석유기업들 간에도 정점 도달 시기에 대한 예측은 분분하다. 로열더치쉘의 경영진들은 ‘탄소추적자’ 시나리오에 동의하며 2020년대에 수요가 정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BP는 2040년까지 원유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수요가 공급보다 먼저 정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은 힘을 얻고 있으나, 석유기업들이 현시점에서 그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는 상당히 미약하다. 

물론 기업들도 완전히 손놓고있는 것만은 아니다. 우선, 기후변화 규제에 취약성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주주들의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시가총액 기준 미국 4위의 석유기업 옥시덴탈 페트롤리움의 주주들이 기후변화의 취약성을 평가해 기업가치에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미국 최대의 석유회사인 엑손모빌의 역시 5월 주주총회에서 주주의 62%는 엑손이 기후변화의 사업 영향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대형 석유기업들은 위험을 헤징하고 있다. 올해 들어 석유공룡들은 캐나다 오일샌드에서 발을 빼는 모습이다. 기업들은 고비용 프로젝트 대신 단기 저비용의 셰일 프로젝트로 사업을 다각화고 있으며,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도 늘리고 있다. 

그러나 커닝엄 연구원은 우려를 지우지 못했다. 

그는 "기후변화에 관한 재정적 리스크는 다방면에 숨어있다. 그럼에도 석유공룡들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석유를 생산할 계획을 유지하고 있다. 수요가 꾸준히 증가한다면 상관없겠지만, ‘탄소추적자’의 가정대로 원유 수요가 2020년대에 최고조에 달한다면 필요하지 않은 프로젝트에 수십억 달러를 낭비하는 결과를 낳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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