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욱 변호사. 전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청와대가 지난 14일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지원 방안 검토’ 메모 등 300여건의 자료를 전격 공개했다.
특검팀은 청와대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고 박 전 대통령이나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증거로 제출할 문서가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 법률적 쟁점이 있지만 필자는 청와대가 문건을 복사하여 사본을 특검에 제공한 것은 명백한 법위반으로 본다.
첫째, 과거의 판결과 이번의 사본 제공은 엄연히 사실관계가 다르다.
청와대는 과거 박관천 경정의 판결에서 법원이 원본이 아닌 사본은 ‘원칙적으로’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고 판시한 것을 근거로 특검에 제출했다 한다.
이 재판에서 법원은 ‘편의상 생산된 것이 명백한 여분의 사본은 대통령기록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규정한 미국 대통령기록물법 제2201조 제2항 등을 논거로 사본은 원칙적으로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건은 수사와 재판을 위해 의도적으로 원본을 복사하여 제공하였다. 즉 원본을 유출하는 ‘방법’으로 사본을 제공한 것이다.
위 두 경우가 과연 같은가? 편의상 생산된 것이 명백한 여분의 사본을 유출한 경우와 처음부터 원본을 유출하기 위해 사본을 하여 제공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둘째, 대통령기록물의 국외반출이나 유출을 금지하는 법규정의 취지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제30조는 대통령기록물을 무단으로 국외로 반출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무단으로 유출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있다. 형법상 2년 이하인 공무상 비밀누설죄보다 훨씬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통령기록물의 국외반출이나 유출을 엄하게 처벌하는 이유는 대통령기록물에는 국가의 중요한 기밀이나 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추후 비밀·지정기록물로 지정되기 전에도 미리 모든 대통령기록물의 국외반출이나 유출을 금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건처럼 대통령기록물의 원본을 복사하여 사본을 무단으로 국외로 반출하거나 유출하는 것을 처벌할 수 없다면 국가의 기밀이나 정보는 과연 어떻게 보호하는가?
셋째, 공무상 비밀누설죄 처벌의 한계다. 공무상 비밀누설죄의 경우 ‘비밀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요건이 필요하고 처벌도 최대 2년에 불과하다.
이번 건의 경우도 비밀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과연 있는가의 문제 때문에 공무상 비밀누설죄 논란이 거의 없는 것이다.
이상에서 대통령기록물 사본 유출의 위법성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더 더욱 심각한 것은 바로 법률에 대한 아전인수격 해석의 문제다.
지금 여당은 과거 2013년 국정원에 보관돼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 남북정상 회담록 사본이 공개됐을 때 법 위반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지금 야당은 사본은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대통령기록물 내용의 유불리에 따라 법률해석이 달라지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사본 공개도 나에게 유리하면 합법이고, 나에게 불리하면 불법이라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법 해석은 모든 경우에,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아울러 법적 안정성을 해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찾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법 해석에 당리당략이나 일체의 정치적 고려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이번의 문건 공개에 청와대가 박 전 대통령이나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는 반드시 훗날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