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서울대 공과대학 학생들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관련 산업과 학문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서울대 공과대학 학생회는 11일 ‘문재인 정부의 독단적인 탈원전 정책 추진과정에 대한 공과대학 학생회 입장서’를 발표하고 에너지 정책과 관련한 과학기술계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입장서에서 "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 이후 몇 개월 새 많은 탈원전 정책들이 급작스럽게 추진되고 있다"며 "하지만 이 과정에서 관련 분야 연구에 종사해 온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대한민국의 원자력 산업은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예비 공학도들은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 에너지 정책이 전문가의 의견 없이 졸속으로 결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며 "정부의 급작스러운 탈원전 정책 추진은 관련 산업과 그 기반이 되는 학문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의 경우 2017년 후기 대학원생 모집에서 5명을 모집하는 박사과정에 1명이, 37명을 모집하는 석·박사통합과정에 11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대 학생회는 "예비 공학도로서 정부의 결정으로 연구 환경이 위협받는 현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독단적인 탈원전 정책 추진과정을 규탄하며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경청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공과대학 학생회 입장서 전문이다.



탈(脫)원전 정책 추진,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경청하라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 참석해, ‘원전이 안전하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으며,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며 탈원전 정책을 공표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완공률 29%의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이 7월 14일 한국수력원자력의 기습적인 비공개 이사회로 인해 중단되었고, 건설 재개 여부는 정부가 구성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로부터 자료를 제공받은 시민참여단 478인이 숙의를 통해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슈가 되고있는 신고리 5·6호기와는 별개로 탈원전 정책은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8월 초 미래 원자력 기술 개발 방향을 비(非)원전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며, 원자력 R&D의 중심을 원전 해체 기술 및 방사선 기술 분야로 바꾸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정부의 예산 축소로 인해 차세대 원전 개발, 연구용 원자로 건설 등의 많은 원자력 관련 연구들이 난항에 빠졌습니다. 이처럼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 이후 몇 개월 새 많은 탈원전 정책들이 급작스럽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관련 분야 연구에 종사해 온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는 배제되었으며, 50년을 이어 온 대한민국의 원자력 산업은 고사 위기에 처했습니다.

과학기술계의 의견이 배제된 에너지 정책 수립

국가의 에너지 정책은 안보, 환경, 산업 경쟁력, 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매우 중대한 국가정책이며 주변국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을 수 없는 ‘에너지 섬’인 우리나라로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에너지 정책은 국가 차원의 충분한 숙고와 토의를 기반으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특히,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관련 학계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 정부의 정책 결정은 이미 결정된 ‘탈원전’ 기조 아래에서 전문가의 의견이 배제된 채 진행되고 있습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정부기관은 연일 기자회견, 홈페이지 개설 등을 통해 탈원전 홍보를 이어가고 있으며, 공공기관인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력문화재단은 기존에 만들었던 ‘원전 안전성’ 홍보자료를 삭제하며 정부의 입장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지난 7월 과학기술계 교수 417명이 ‘전문가 의견 수렴과 합리적인 공론화 과정을 통해 장기 전력 계획을 수립하라’며 성급한 탈원전 정책 추진에 반대하는 입장서를 발표하였지만 여전히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9월 28일 진행된 순회토론에서 ‘중립성’을 근거로 한국원자력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정부출연기관 소속 연구원의 토론 참여를 막으며 전문가의 의견 전달 자체를 제한하기도 하였습니다.

정부에서 ‘탈원전 모범 국가’로 제시하는 독일과 스위스는 각각 25년, 33년의 긴 공론화 과정과 충분한 각계의 의견 청취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소통을 중시한다는 정부는 정작 관련 분야 전문가인 과학기술계로부터는 귀를 닫은 채 정책 결정을 빠르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우리 예비 공학도들은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 에너지 정책이 전문가의 의견 없이 졸속으로 결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합니다.

정부의 독단적인 결정에 존폐를 위협받는 학문

정부의 급작스러운 탈원전 정책 추진은 관련 산업과 그 기반이 되는 학문 자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탈원전 선언’ 이후 국가 R&D 예산 심의 및 조정에 있어, 원전 제염·해체 예산은 증액되었지만 원자로 관련 예산은 대폭 삭감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지난 20년간 진행해온 SFR(소듐냉각고속로) 개발 사업이 중단 위기에 처했으며, ‘APR+’, ‘IPOWER’ 등과 같은 혁신형경수로의 건설과 개발 역시 마찬가지 상황에 놓였습니다.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기술은 지속적인 연구와 투자를 해야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연구가 중단되어 주도권을 빼앗기면 이를 다시 되찾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의 경우 2017년 후기 대학원생 모집에서 5명을 모집하는 박사과정에 1명만이, 37명을 모집하는 석·박사통합과정에 11명만이 지원하였습니다. 50년에 걸친 노력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을 이룩한 원자력 산업계와 학계이지만, 정부의 독단적인 정책 추진으로 인해 쌓아왔던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과학기술계를 대하는 정부의 시선, 바뀌어야 한다

과학기술정책의 기조가 바뀌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당사자이자 전문가 집단인 과학기술계의 의견이 배제되고, 수십 년을 내다보고 진행하였던 R&D가 영향을 받으며, 그 결과에 따라 관련 산업과 학문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면 이는 과학기술계의 존재를 부정하는 처사가 될 것입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을 비롯한 전반적인 국정 운영에 있어 과학기술계의 입장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공학이라는 학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예비 공학도로서 정부의 결정에 의해 연구 환경이 위협받는 현 대한민국의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이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생회는 문재인 정부의 독단적인 탈원전 정책 추진과정을 규탄하며,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경청할 것을 요구합니다.

제30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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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정책의 반지성적인 추진 과정을 규탄한다

우리 학생들은 공학이 사회, 정책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여 다시금 그 산업이 잃은 신뢰를 되찾고 원자력 정책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산업의 근간은 공학이며 공학 역시 산업을 떠나서는 존립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한 산업에 대한 정책을 시행하기 전에 그 정책에 대한 산업계의 주장은 물론 관련 공학계의 주장 또한 경청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따라서 우리 공학도들은 분노합니다. 공익을 위한 것이 사익을 위한 것으로 여겨져 정책 결정을 위한 토론과정에서 제외되고, 결국 피땀으로 빚어낸 원자력 산업이 붕괴하는 것을 좌시하고만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원자력관련 연구예산이 대폭 삭감되어 직접적으로 공학자들의 목을 조이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학문적 양심을 지니고 현실과 타협하기를 거부하기에 두렵습니다. 정권에 따라서 학문의 필요성 자체가 도전받고 산업의 흥망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 참된 과학자와 공학자가 설 수 있는 곳은 없기 때문입니다. 현실과 타협하는 학자만이 살아남는 학문은 결코 발전할 수 없습니다.

탈원전이라는 정책이 형성되려면, 원자력공학을 비롯한 관련 학문세계가 받을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공학도들의 깊고 넓은 토론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문성을 갖춘 공학도들이 원자력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기를 요구합니다. 더 나아가 공학도들이 과학과 공학의 발전을 위해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이 상황을 비단 원자력공학에 대한 위협이 아닌 공학 전반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나라의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또 아직까지도 담당하고 있는 산업과 학문이 숙의를 거치지 않고서 국가에게 외면 받아 버려지는 선례를 남기는 것을 우리는 그저 관망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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