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감 기업인 소환, 갑(甲)질 고리 끊어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7.10.17 08:09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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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국정감사 대상기관은 정부와 지자체 관련 공공기관으로 명확히 규정돼 있다. 그럼에도 올해는 국감 역대 최다 기업인 소환이 예정돼 있다.

국회가 무분별한 신청을 방지하기 위해 ‘증인실명제’를 시행했지만 이 제도는 전혀 쓸모없는 제도임이 증명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관련 공공기관에 종사하지도 않은 민간인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되었다면, 오히려 국가에 협조할 특별한 챤스가 생긴 것으로 알고 평소 모자랐던 애국점수를 높일 절호의 기회로 삼아 기뻐해야 할 지경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겠다. 우선 각 의원 보좌관이 리스트를 만들고 의원이 증인 후보로 낙점한 후 그 후보들을 각 상임위원회에 회부하면, 각 상임위원회는 증인 채택 등 국감계획서 확정을 위한 전체회의를 열고, 증인을 최종적으로 확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각 그룹의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혹시 소속 그룹 총수가 증인으로 채택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심정으로 국회에 상주하면서 보좌관과 의원의 동향과 눈치를 봐가며 밤낮없이 동분서주(東奔西走)한다.

국회는 회사의 실무자를 불러 확인해도 충분한 것을 굳이 총수를 불러낸다. 국회로부터 초청장을 받은 총수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또 어떤 곤욕을 치러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고, 실무진들은 국감대응 팀을 구성하여 예상 질문과 답변 준비로 초비상 상황이 된다. 생난리가 따로 없다.

국감 현장은 기업인의 굴욕 현장이 된다. 그들은 뭔가 크게 잘못한 일이 없어도 고양이 앞의 쥐가 된다. 일부 국회의원은 민간 증인에게 상습적으로 불벼락, 삿대질, 막말, 협박, 비아냥을 쏟아낸다.

질문 중에는 코메디 같은 질문도 흔하다. 버르장머리 없는 손자가 수염을 잡아당기듯, 아들뻘, 손자뻘 되는 일부 의원이 패륜적 막말을 한다 해도 유구무언이 될 수밖에 없다. 갑 중의 갑이 의원이다. 막말하는 그들 눈엔 기업인이 그냥 개돼지로 보일 뿐인 것 같다.

국감의 주인공은 의원이다. 일부 의원은 국감을 통하여 스타탄생을 노리는 것 같다. 그러므로 국감 증인은 절대로 의원님의 말씀을 끊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의원이 빛날지 매순간 마다 최대한의 기지를 발휘해야 한다.

얼마나 해박한 지식을 가지시고 있는지 다 털어놓을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려야 한다. 혹시 질문을 하면 ‘예’, ‘아니오’로 간단하게 대답하여야 한다. 신문에 다 나온 뻔한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혼자 실컷 떠들고 난 끝에 한마디 짤막한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증인이 답을 하려고 하면 "그만 됐어요!"라면서 예의 없이 말을 끊는 경우가 아주 자주 있다. 자기말만 하겠다는 것이고 TV에 자기 얼굴만 비치면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회사에서 국감대응 팀까지 꾸리고 몇날 며칠을 다른 일도 젖혀둔 채 준비했건만 증언할 기회도 주지 않고 하루를 허탕치는 일도 흔하다. 국감은 의원의 홍보수단으로 안성맞춤이다.

일부 의원은 국감의 취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회사 과장이나 대리 또는 직원이 잘 알 수 있는 현장의 문제를 묻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노인이 다 된 총수가 새파란 의원 앞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 모양을 하고 있는 꼴을 일부 의원은 통쾌하게 즐기는 것 같다. 마치 원님이라도 된 기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단 한명에게라도 월급 주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의원들은 잘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국회가 어찌 이렇게 기업인들에게 어려움만 가중시키는 조치들만 만들어내겠는가.

그 중에도 고약한 것이 기업 총수를 불러놓고 맘껏 창피주는 국감 증인신청이다. 창피를 주거든 차라리 창피당하고 말아야 한다.

그러나 증인의 가족, 회사의 주주나 임직원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국민 누구도 기업인이 창피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안심해도 된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남긴 반지에 새겨진 ‘이 또한 지나가리니!’라는 문구를 마음속에 되뇌이면서, 막말 국감을 한국에서 기업하는 죄로 감수해야 할 홍역으로 생각하여야 그나마 위안이 된다. 이제는 이런 갑질을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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