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칼럼] 특정건설범죄 가중처벌법이 돼버린 건설산업진흥법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7.11.23 09:58
정녕호 한국CM협회 건설산업연구센터장

▲정녕호 한국CM협회 건설산업연구센터장


최근 ‘건설기술진흥법’의 처벌조항을 강화하려는 논의가 국토부를 중심으로 관련단체와 업계가 참여한 가운데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국토부는 그 추진배경을 건설 중 사고에 대한 기술용역업계의 책임을 강화하고, 부실공사, 건설안전사고 및 부정부패를 예방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그간 부패척결추진단의 수사에서 건설사업관리 기술자의 부실업무, 위법행위를 통한 공사비 편취사례가 꾸준히 적발됨을 그 배경으로 들고 있다. 이에 따라 감독권한대행 등 건설사업관리자에게 의무규정을 신설하고 이에 따른 벌칙조항도 도입하자는 논의다.

건설기술진흥법의 벌칙은 1988년 구법인 ‘건설기술관리법’ 제정 당시 ‘시공감리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시공감리 또는 전면책임감리를 부실하게 하거나……건설공사의 발주자 또는 공중에 현저한 피해를 입게 한 경우에는 5년이하의 징역 또는 2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으로 출발했다. 이후 1995년 처벌조항을 전면 개정해 10년이하의 형을 신설하고, 무기징역을 최고형으로 하는 것으로 처벌을 강화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시 상황은 크고 작은 건설관련 사건사고가 꾸준히 이어져왔고 특히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형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국민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건설기술인이 원인제공자로 지목되어 모든 비난을 받아야 했던 시기였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 따라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됐으나, 여론에 밀린 감정적 입법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품질관리를 통한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책임감리제도를 도입하고, 건설생산의 선진화를 통한 효율 증대와 글로벌 경쟁력 향상을 위해 건설사업관리(CM)를 법제화 했다. 2014년 ‘건설기술관리법’이 ‘건설기술진흥법’으로 법의 명칭을 포함해 전면개정 됐으나,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기술관리방식과 처벌은 변함없이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처벌을 강화한 덕분에 지금은 우리국민이 과거보다는 좀 더 안전한 시설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을까? 전문가들의 평가는 그리 너그럽지 않다. 90년대 중반에 발생한 대형사고의 원인은 대체로 현장에 상주하여 품질을 감독한 공무원의 안일함과 부정부패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으며, 책임감리제도를 통하여 공직자의 현장상주를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민간의 역량을 활용한 것이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즉, 처벌보다는 문제점을 정확히 찾아 그 대응방안을 제도화한 것이 바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건설사업관리는 비전문가인 국가기관 등 발주자가 전문가에게 건설생산의 전반에 대한 자문과 일정부분에 대하여 책임을 위탁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전문가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과하면 전문가는 방어적 행동을 취하게 된다. 이는 결국 책임회피를 위한 과잉방어를 유발하게 되며, 과잉방어는 결국 건설생산물의 원가상승요인으로 작용하여 세금을 부담하는 국민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건설기술진흥법은 전형적인 ‘과잉범죄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과잉범죄화란 다른 제재수단으로 통제해 왔거나 통제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해 국가가 형벌을 부과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나친 규제는 사회적으로 비효율과 부패를 증대시키며 경제 분야에서도 문제를 만들게 된다. 자유로워야할 민간에 대한 규제가 증가할수록 민간경제의 활력은 떨어진다.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자 90년대 중반과 지금의 상황은 비교하는 것조차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이 달라져 있다. 건설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변화된 건설기술인의 의식수준 및 도덕적 관념을 당시의 수준으로 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건설기술진흥법은 법의 명칭에 ‘진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법 중 유일하게 무기징역형을 두고 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나 있을 법한 맞지 않는 옷이다. 진흥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제자리를 찾기 위한 관련부처와 건설기술인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


신보훈 기자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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