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정치인 ‘말폭탄’…나비효과 일어날 수도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7.11.23 15:29

이진우 산업부장


이진우



정치인을 일컬어 ‘말’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고들 한다. 그들이 입으로 뱉어내는 말은 늘상 신문과 방송에 주요 이슈로 등장하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온갖 화제를 몰고 다닌다.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말잔치’는 종종 국가 전체를 뒤흔드는 참사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인은 말을 가려해야 한다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지만, 오늘도 여전히 정가에서는 좀 더 신중하고 품격 있는 어휘 사용은 아예 실종된 듯하다. 

지난 20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3박4일 간 일정으로 베트남 호치민시를 방문하기에 앞서, 현지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의 국내복귀(리쇼어링) 방안을 모색하겠다며 ‘세일즈 외교’를 표방하고 나섰다. 

국내 일자리 창출에 적극 기여해 보겠다는 제1야당 대표의 발언으로는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정치지도자로서 전혀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말폭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특히 재계에서의 비판은 냉혹했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거나 또 국내로 리턴하는 배경에는 철저한 경영논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을 간과한 그저 홍보용 정치적 수사라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국내에서 사업하기 좋은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면 굳이 힘들게 해외로 나갈 이유가 전혀 없다. 또 국내 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현지에 나간 기업들이 그곳의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면, 생존을 위해라도 결국 더 나은 사업장 소재지를 찾아 이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울러 글로벌 경제에 동참하지 않고서는 성장하기 어려운 한국경제 현실 속에서 기업들은 경쟁사보다 남다른 경쟁력을 갖춰야만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경영자들 역시 막대한 설비투자와 인적자원이 소요되는 의사결정을 어느 정치지도자의 리쇼어링 요구가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홍 대표가 문재인 정부의 ‘기업 옥죄기식 정책’으로 인해 국내 기업의 오프쇼어링(생산기지 해외이전)을 가속화 시킨다는 비판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러한 주장은 자유한국당이 그간 지속적으로 펼쳐온 친기업 정책에 대해 인식 변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치적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판단이다. 

여당이었던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시절에 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주도했지만, 오히려 사회 양극화만 심화시키고 사실상 국가의 경제기반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 

더욱이 재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베트남 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리쇼어링 모색 방안을 현실화하겠다고 정치권이 나선다면, 이는 우리나라와 베트남 간의 외교 갈등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어느 정치인이 한 순간 주목을 받기 위해 내뱉은 말이 어떤 의도이든 간에 결국 국가 간의 외교 문제로 확대된다면, 이는 마치 나비의 단순한 날갯짓이 날씨를 변화시킨다는 ‘나비효과’가 일어날 수 있는 참사로도 번질 수 있다. 

올해 들어 미국과 북한의 유력 정치인들이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거침없이 태평양을 오가는 ‘말폭탄’을 쏟아내며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를 한때 긴장으로 몰고 간 바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현란한(?) 정치적 수사는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이에 맞선 북한의 젊은 지도자는 세계 최강국 수장의 협박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 내공을 선보이며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전망할 정도로 긴장분위기가 한때 최고조에 이르기도 했다. 여전히 북핵 문제는 진행형으로 나비효과를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고성과 막말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들은 얼마 전 한 정치인이 보여준 품격 있는 화술을 목도하고 감탄했다. 

지난 9월 11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정감사 기간 대정부질문에서 국회의원들이 무엇을 질의해도 청중들이 상상한 그 이상의 시원한 ‘사이다 답변’을 함으로써, 정치인의 말은 어때야 하는 지에 대해 새롭게 각인시켰다. 이 총리 역시 ‘고품격 총리’ ‘우문현답’이라는 칭찬을 한 몸에 받았다. 

이제 우리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품위 있는 정치인의 ‘말잔치’를 매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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