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망중립성 원칙 폐지에 실리콘 밸리 강력 반발…국내 영향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7.11.23 21:35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22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망중립성(Net Neutrality) 정책을 뒤집는 최종안을 공개했다.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가 웹 콘텐츠를 차단하거나 감속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망중립성 원칙은 2015년 제정된 뒤 2년 만에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페이스북·구글·넷플릭스 등 IT공룡들은 강력 반발했고, 국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정부와 ICT업계도 촉각을 곤두 세우는 모양새다.


◇미 FCC, 망중립성 원칙 폐기안 공식 발표

FCC는 이 안을 오는 12월 14일에 표결에 부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 FCC 위원의 분포로 볼 때 아지트 파이 위원장이 주도해 만든 이 안은 통과될 것이 확실시된다고 CNN 방송은 전했다.

최종안은 광대역 인터넷 액세스를 통신법상의 ‘타이틀 2’ 대신에 ‘타이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매우 사소한 변경 같지만, 이는 ISP를 ‘공공 서비스’가 아닌 ‘정보 서비스’로 변경해 시장의 원칙에 따라 작동되도록 함을 의미한다.

기존 망중립성 정책은 ISP를 공공 서비스로 분류해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데이터의 내용이나 양에 따라 데이터 속도나 망 이용료를 차별화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정보 서비스로 변경된 새 법안에서는 컴캐스트나 버라이즌과 같은 ISP가 합법적으로 인터넷 트래픽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거나 특정 앱이나 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파이 위원장은 버라이즌 출신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했다. 그가 버라이즌이나 컴캐스트에 유리하도록 망중립성 정책을 폐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던 이유다.

파이 위원장은 "자유시장 원칙에 반하는 망중립성은 폐기돼야 한다"면서 "오바마 정부의 규칙들이 시장에 불확실성을 가져왔고, 불확실성이 성장의 적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FCC 위원장을 지낸 줄리어스 제나초위스키는 "반(反) 차별과 투명성을 위한 망 중립성 원칙은 혁신과 투자의 생태계 조성에 기여해왔으며 다른 나라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됐던 것"이라며 폐지안을 비판했다.

FCC 최종안이 공개되자 실리콘 밸리 IT 기업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페이스북의 에린 에건 공공 정책 담당 부사장은 "오늘 FCC에 의해 발표된 최종안은 인터넷이 모든 사람에게 공개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망중립성 보호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구글도 성명을 통해 "그동안 망중립성은 소비자들을 위해 제대로 작동됐다"면서 "이에 반하는 FCC 안은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망중립성 폐기로 가장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으로 보이는 넷플릭스는 "특정 기업을 위한 망중립성의 폐기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동통신 회사인 버라이즌 등이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나 슬링 TV의 속도를 저하함으로써 버라이즌의 동영상 스트리밍 자회사인 파이오스 등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도 "망 중립성 원칙이 폐지되면 통신 공룡 AT&T나 미 최대 케이블TV 업체인 컴캐스트 같은 회사가 특정 사이트나 온라인 서비스 접근에 더 많은 이용료를 부과하고 경쟁업체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망 중립성이 폐지되면 인터넷 업계엔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넷플릭스나 페이스북처럼 데이터를 많이 사용하는 서비스 사업자에겐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망 중립성’ 강화 정책기조…변화 생길까

FCC의 결정에 국내 ICT업계도 ‘비상’이다. 정부의 망 중립성 정책에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글로벌 추세에 맞춰 지난 2011년 가이드라인 형태의 망 중립성 지침이 시행된 이후 2013년 합리적 트래픽 관리 기준을 마련하고, 지난 8월부터 망 중립성 강화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자간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제한 부과의 부당한 행위 세부기준’ 고시 제정안도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 망 중립성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미국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며 본격화됐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지난 3월 스페인에서 열린 ‘MWC 2017’에서 국내 이동통신 업계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박정호 사장이 망 중립성을 화두로 던지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당시 박 사장은 망 중립성에 대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며 "누군가가 너무 많은 초과이익을 가져갔다면 관련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배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통신사의 인프라를 활용해 성장한 인터넷기업들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더욱이 올 상반기 SK텔레콤이 자사 가입자에게만 인기 모바일게임 ‘포켓몬고’에 이용시 데이터 비용을 전액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이른바 ‘제로 레이팅’ 정책을 내세우며 국내 ICT 업계 전반으로 망 중립성 논란이 확산됐다.

국내 인터넷업계는 망 중립성 폐지에 대해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다만 업계 전반적으로 우리 정부가 당장의 정책적 변화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 170여개 인터넷기업들이 모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관계자는 "망 중립성 원칙 폐지에는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면서도 "미국에서 폐지된다 하더라도 정부는 현 상황을 유지하겠다는 기조를 보이고 있어 당장의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대로 통신사들은 ‘표정관리’에 나서며 말을 아끼는 상태다. 이통사 입장에서는 ‘합리적 트래픽 관리’를 명분으로 자신들의 망을 이용한 각종 서비스에 대한 차등 제공이 가능해져 인터넷기업과의 협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미국의 상황과 다른 국가들의 반응을 예의주시하고 추후 정책적 논의를 진행할 방침이다.


◇망 중립성(Net Neutrality)이란? 개인이든 사업자든 인터넷망 이용에 있어서 차별받지 않고 공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특정 유선 인터넷망 업체가 기업 규모나 국적, 시장 경쟁상황 등을 이유로 망 접속을 끊거나 거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통신사가 인터넷을 활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으로, 현재 글로벌 ICT 업계의 대표주자인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같은 기업 성장의 발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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