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파이로프로세싱 사업검토위에 전문가 포함시켜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7.12.10 11:20

천근영 에너지부 부국장


천근영

세계 최대 규모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연구시설을 취재차 방문한 적이 있다. 유성 한국원자력연구원 내 ‘ PRIDE’ (PyRoprocess Integrated inactive DEmonstration). 파이로프로세스 모의시험시설이다. 당시 이 실험시설을 총괄하던 전문가인 S본부장은 "(파이로프로세싱은) 어렵고 힘들지만 우리 세대에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셀에서 연구원들이 하는 작업 하나 하나가 우리나라와 세계 원자력계가 한 걸음 전진하는 아름다운 역사"라며 내부시설을 조목조목 설명해줬다. 그게 불과 1년여 전이다.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관련 연구사업인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건식 재처리) 연구 지속 여부를 내년으로 미루겠다고 8일 밝혔다. 연내 하겠다고 했다가 또 미룬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관련 기술들은 1950년대부터 주요 원자력 사용 국가들에서 연구개발이 진행됐으나 기술개발이 어렵고, 경제성이 낮다는이유로 포기해 아직 상용화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또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것보다 새로 우라늄을 채굴해 쓰는 게 훨씬 싸고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정부가 ‘우리 세대에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에 미온적으로 나오는 것은 상용화도 어렵지만, 상용화가 되었을 때의 경제성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가 "지난 20여 년간 원자력 연구개발(R&D)사업은 큰 변화 없이 추진됐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 미래지향적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고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수출에 방점을 찍고, 원자력계의 새 먹거리 창출을 목표로 추진됐던 정부의 원자력연구개발(R&D) 방향이 에너지전환에 따라 안전중심으로 바뀌기 때문에 신중하게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원자력계는 20년 동안 6800억원이나 투입한 국가적 기술 연구사업을 중단시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또 그래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분위기는 심상치않다. 비관적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낙관적이라고 안심할 수도 없는 기류다. 연구개발 지속여부를 결정할 위원회에 원자력 전문가는 철저히 배제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구성한 파이로프로세싱 사업재검토위원회 7명의 위원은 물리 화학 기계 에너지 환경 등 기술적으로 인접한 관련 전문가들이다. 정부는 ‘이해관계 충돌을 사전에 배제하기 위한 것이고, 모두 중립적 성향의 관련분야 인사들’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기술의 필요성과 확대성 미래성장성을 잘 아는 이 분야 전문가는 빠져 있는 것이다.

원자력학회장을 지낸 한 원자력 전문가는 "아무리 이해관계 충돌을 배제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 분야 전문가들을 아예 배제한 것은 합리적 과학행정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정부는 객관적이면서 밀도 있는 검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재검토 기간 동안 상시적인 검증활동을 수행하고 찬반 양측의 의견을 수렴하는 온라인 시스템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또 토론회 등을 통해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겠다고도 했다. 위원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아무리 이 분야와 관련이 있다고 그들은 전문가가 아니다. 연관분야 전문가는 어떤 수사로 포장해도 비전문가다.

파이로프로세싱은 국제사회의 핵무기 확산 우려를 줄이는 동시에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고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한 기술이다. 특히 2011년부터는 미국과 타당성 검증을 위해 핵연료주기공동연구까지 벌이고 있다. 이 기술은 미래기술이다. 원전을 전원으로 활용하는 한 꼭 상용화해야 할 기술이다. 성적이 좋지 않다고 축구 국가대표 코치진을 농구나 야구에서 찾을 순 없다. 이미 구성된 위원을 빼고, 이 분야 전문가를 넣으라는 게 아니라 구성된 위원회에 최소한의 전문인력을 포함시켜 본질이 흐트러지는 시행착오는 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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