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송진우 기자 |
[에너지경제신문 송진우 기자] 자충수란 바둑에서 쓰는 용어다. 바둑에서 자기의 수를 줄이는 돌, 즉 상대방에게 유리한 수를 일컫는다. 일상에서는 스스로 한 행동이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했을 때 ‘자충수를 뒀다’고 표현한다.
제너럴모터스(GM)가 타카타 에어백 리콜 사태와 관련해 내린 결정이 딱 ‘자충수’에 걸린 모습이다. 이번 사태를 대하는 GM의 입장은 명확하다. 자사 차량에 탑재된 타카타 에어백이 사고 위험성이 없단 사실을 증명, 리콜을 피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것이다.
타카타 에어백은 에어백을 팽창시키는 인플레이터 장치 결함으로 에어백 작동 시, 내부 부품이 탑승자에게 금속 파편처럼 튀어 상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다. 이미 세계적으로 19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200여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GM은 지난해 미국 고속도로 교통안전국(NHTSA)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자사에 탑재된 타카타 에어백이 안전하다는 점을 증명할 기간을 요구한 바 있다. 이를 통해 GM은 1년간 유예기간을 획득했으며, 250만대에 이르는 대규모 리콜을 한 차례 늦췄다.
이후 GM은 우주항공업체인 ‘오비탈 ATK(Orbital ATK)’와 함께 타카타 에어백 인플레이터가 지닌 위험성에 대한 조사에 착수해 현재까지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 뉴스는 최종 분석이 올해 8월이 지나면 도출될 것으로 예측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결과는 보고되지 않았다.
문제는 본사의 방침 덕분에 한국지엠과 지엠코리아가 감내해야 할 질타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타카타 에어백 사태를 묵시한 3인방(벤츠, 한국지엠, 지엠코리아) 중 최근 벤츠가 고객 안전을 고려해 타카타 에어백을 장착한 3만 2000여대 차량에 대한 리콜을 실시하기로 밝혀, 비난의 화살은 한국지엠과 지엠코리아로 향한 상태다.
사실 이번 사안을 두고 "벤츠도 리콜하는데, 한국지엠과 지엠코리아는 왜 안 하느냐"고 윽박지르기 식으로 비난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 이번 리콜은 벤츠가 미국에서 기존부터 진행하던 리콜을 한국에 한발 늦게 적용한 사례인 반면, GM은 본고장인 미국에서조차 타카타 에어백 리콜에 나서지 않고 있다. 사안이 결 자체가 다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 현재로서 국내에서 타카타 에어백 리콜을 결정하지 않은 업체로는 한국지엠과 지엠코리아가 유일하기에 미움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은 분명하다.
한편으론 본사(GM)가 둔 ‘자충수’ 덕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있는 한국지엠과 지엠코리아가 딱하기도 하다. 자동차 업계에서 이미지 실추가 얼마만큼 치명적인지 알지만, 어떻게 손 쓸 도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한국지엠은 여전히 북미에서 글로벌 차원으로 진행 중인 테스트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수행할 것이란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지엠은 본사의 실험이 끝나는 내년 3월에 리콜 계획 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GM은 과연 실험을 통해 자사 차량에 탑재된 타카타 에어백이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해 ‘GM의 타카타 에어백=안전’이란 타이틀을 획득해낼 수 있을까. 오히려 그 과정에서 고객 안전 문제를 간과했다는 비판으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어 더 큰 악재로 작용할 덫을 스스로 파고 있는 건 아닐까. 판세를 역전하려 놓은 ‘묘수’가 ‘자충수’가 되는 일은 한순간이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