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View] '70달러 초읽기' 국제유가, 이란發 리스크에 100달러로 폭등하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01.11 13:23

개혁 실패 불만 전국적인 반정부시위...상승세 타던 유가에 불지펴
이란發 유가리스크 고조시 최악땐 유가 100달러 돌파


▲(사진=이미지투데이)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2018년 유가를 좌우할 주요 변수로 예상됐던 이란. 그러나 리스크는 핵합의 파기가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튀어나왔다.

경제난과 정부의 개혁 실패에 불만을 품은 이란 젊은층과 빈민층이 거리로 뛰쳐나오면서 10년 만의 최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번진 것이다. 시위 확산과 진압에 따른 상황 악화로 이란이 원유 생산을 중단하는 최악으로 치달으면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10일(현지시간) 국제유가는 약 3년 만에 최고치로 상승하며 배럴당 63달러를 돌파했다. 브렌트유는 70달러를 불과 63센트 앞에 남겨두고 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2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1%(0.61달러) 오른 63.5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2014년 12월 이후 최고치다. 장중에는 63.67달러까지 올라 지난 2014년 12월9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3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0.55%(0.38달러) 상승한 69.20달러를 기록했다. 장중에는 지난 2015년 5월 이후 최고치인 69.37달러까지 상승했다.


◇ 9년만에 대규모 이란 시위…공급 리스크 발발하나?

월스트리트저널(WSJ),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계란값 인상을 반대하는 평화집회로 시작한 이란의 시위는 전국적인 반(反)정부 시위로 확산되며 유혈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2009년 정치적 민주주의를 외치며 수도 테헤란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녹색혁명(Green Movement)’과 달리, 이번 집회는 개혁 실패로 인한 경제난과 양극화가 핵심이다. 9년 전과 달리, 수도를 너머 광범위한 지역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시위 여파가 상대적으로 클 것으로 관측된다.

최고 종교지도자에게 반감을 표출하는 이슬람 신정체제 반대 시위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중동 패권경쟁을 벌이며 재정을 쏟아부으면서 경제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민생고에 항의하는 시위로 촉발된 일주일 이상 지속된 이란 반 정부 시위로 최소 21명이 사망했다. 시위 과정에서 1000명 이상이 체포됐으며 이중 학생은 최소 90명으로 파악됐다.

FT는 실업률과 물가 상승에 대한 두려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삭감이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란 정부는 지난해 12월 10일 2018년 예산안을 제출했다. 예산안에 따르면 약 3000만명이 현재 받고 있는 정부 보조금이 대폭 삭감된다.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는 한 이란인 교사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돈이 없어서 20년 넘게 탄 차를 최근 팔았다"며 "기름값이 오르면 다른 물가도 모조리 오를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CNN 역시 "이란인들은 2015년 이란이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과 핵합의를 체결한 이후 삶의 질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분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CNN은 또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를 인용해 "이란에 일자리가 없다. 15~29세의 청년 실업률은 24%를 훨씬 넘는다. 도시에 거주하는 청년과 여성 실업률은 더 높다"면서 "석유 산업과 관광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산업군의 형편은 더 나빠졌다"고 전했다.


◇ 이란 반정부 시위에 유가는 70달러 ‘눈앞’

▲이란 반정부 시위대들이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앞에 위치한 라피엣공원에서 이란 국기를 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P/연합)


금세 끝날 줄 알았던 이란 반정부 시위 리스크는 열흘 가까이 이어지며 유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자 오름세를 이어가던 국제유가 랠리에 기름을 부은 것.

지난 하반기부터 유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더니,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이었던 29일(현지시간)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가 동시에 배럴당 60달러를 돌파했다. 2015년 6월 24일 이후 2년 반만에 처음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 이후 재고가 줄어들면서 시장이 타이트해지자, 투자자들의 눈길이 중동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란 시위가 2주 가까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유가는 더 뛰어오르고 있다. 9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3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브렌트유는 70달러 초읽기에 들어갔다. 마침내 저유가 시대가 끝나고, 고유가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원유시장 전문 뉴스레터인 쇼크리포트(Schork Report)는 "이란 정세의 불안정성이 심화되면서, 2018년 유가 랠리를 이끌고 있다"고 밝혔다.


◇"실질적 공급 차질보단 투자심리에 영향 미칠 듯"

그렇다고 해도 이란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실질적인 붕괴를 낳을 가능성은 미미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보다는 투자심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에너지 애스팩츠의 리처드 맬린슨 애널리스트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도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란 시위가 인구가 희박한 지역에 주로 위치한 유전지대에 즉각적인 위협을 가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정치적 측면에서나 원유시장에서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OPEC 감산으로 현재 시장이 타이트한 상황이기 때문에 지정학적 이슈들에 더 눈길이 쏠리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스웨덴계 은행인 SEB의 비야네 실레드로 수석 상품 애널리스트는 "이란의 일일 원유생산량 380만 배럴에 달하는데, 시위로 인해 공급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실제 공급차질이 발생할 경우 국제유가에 미칠 영향력은 막대할 것으로 실레드로는 예상했다. 이란 유전이 붕괴되면, 브렌트유는 순식간에 배럴당 100달러로 폭등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브렌트유는 배럴당 70달러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만큼, 완전히 불가능한 전망은 아니라는 평가다.


◇ 펀더멘털·기술적 요인 모두 하방압력 거세

사실 이란 공급붕괴 우려는 일시적 요인에 불과하다. 시위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고, 정부가 진압을 시작하면 시위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는 점차 완화되기 때문이다. 이후 초점은 다시 펀더멘털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원유시장의 펀더멘털적 요인은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까. 좋지만은 않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1분기에서 길게는 2분기까지 재고가 축적될 것으로 예상했다.

기술적 요인 측면에서는 투자자들은 원유선물 강세에 기록적인 수준의 포지션을 쌓고 있는데, 지나친 낙관론은 통상 머니매니저들이 대거 매도하기 직전 일어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즉, 이란의 지정학적 사건이 힘을 잃고 난 이후에는 유가에 하방압력을 가하는 지표들로 둘러쌓인 상황이 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실레드로 애널리스트는 "올해 원유시장은 유가에 하방압력을 가하는 단 하나의 요소 없이 장밋빛 가득한 전망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때문에 아주 약간의 조정만 이뤄지더라도 시장에는 직격탄이 될 것"이라 경고했다.

실제 독일 투자은행 코메르츠방크는 향후 몇 개월간 유가가 최대 10~15%의 조정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진 와인버그 코메르츠방크 애널리스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유가 상승세는 분명히 투기의 과열 때문"이라며 "현재 펀더멘털이 유가 강세를 뒷받침하지 못하기 때문에 유가가 최소 10~15%의 조정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렉스닷컴의 파와드 라자크자다 애널리스트 역시 "현재 유가에 나타난 기술적 패턴들을 주시하고 있다"며 "펀더멘털을 고려할 때, 유가의 패턴이 배럴당 65~75달러 수준으로 올라가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BOCI GCUK(中銀國際環球商品)는 원자재 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역대 최고 수준으로 쌓인 투기적 포지션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맞물리면서 지난해 말부터 국제유가가 랠리를 이어갔다. 미국 달러화의 약세가 이어지고 있는데다, 미국 재고가 기록적인 수준으로 감소하면서 2018년 1분기 유가는 상승 추세를 이어갈 것"이라 전망했다.

다만, △미국 셰일업계의 증산, △계절적 수요 약화, △ OPEC 산유국들의 감산 출구전략 등이 리스크로 작용하면서 2분기 유가에 하방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상희 기자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