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짚어본 원유시장 '4대 신화'
경쟁자서 상생의 길...OPEC-셰일 균형점 찾는 중
국제유가 상승세 속 안정화 전략
"감산반대" 러시아도 패권 위한 후퇴
셰일 생산성 변곡점 증산 힘들듯
석유공룡 셰일 유전 지배 영향도...

(그래픽=에너지경제신문)


국제유가의 상승세가 매섭다. 지난 3개월 사이에만 벌써 25% 가량 올랐다. 원유시장이 타이트해지고 있다는 신호가 잇따르자 시장의 초점이 원유재고나 미국 산유량 대신 지정학적 리스크로 옮겨지고 있는 데 힘입은 것이다. 

국제유가는 12일 약 3년 만에 최고치로 상승하며 배럴당 64달러를 돌파했다. 브렌트유는 70달러를 종가기준 불과 13센트 앞에 남겨두고 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2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0.8%(0.50달러) 오른 64.30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014년 12월 이후 최고치다. WTI는 이번주 들어서만 4.7% 상승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3월물 브렌트유는 0.1% 상승한 배럴당 69.26달러로 마감했다. 브렌트유는 장중 한때 최대 1.2%까지 오르면서 지난 2014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70달러선을 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같은 상승기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일단 그 전에 지난 몇 년간 시장에서 만들어진 4가지 신화를 짚어야 한다. 2014년 유가 붕괴 이후 시장은 △수급 재균형 △OPEC과 셰일 간 대결 △러시아와 OPEC의 불안한 동맹관계 △OPEC의 감산 연장과 2018년 말 협약 종료 △낮은 가격에 대응하는 셰일업계의 탄성에 주목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프레임이 시장을 좁은 시각으로 보게 만들어, 원유생산자들이 시장에 참여하는 방식에 해를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① OPEC 출구 전략은 말 그대로 ‘감산 중단’을 의미한다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OPEC 본사. (사진=AFP/연합


사우디 아라비아와 러시아를 비롯해 전세계 24개의 주요 원유생산국들은 지난 2016년 11월 30일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하루 180만 배럴의 원유를 감사하는 데 합의했다. OPEC의 역사적 합의는 2016년 11월 29일(현지시간) 배럴당 45.23달러에서 2018년 1월 10일 63.57달러까지 약 13개월만에 40% 넘게 끌어올렸다.

전문가들은 "올해 말 협약이 중단될 것이라는 전망은 틀렸다"면서 "OECD 재고가 5년 평균으로 낮아지면서 시장 재균형점에 도달하더라도, OPEC과 러시아, 비회원국들은 감산을 완전 중단하기보단 기한이나 감산폭을 완화하는 쪽으로 대규모 전략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분석했다.

유가는 올랐지만, OPEC의 손은 여전히 묶여 있다. OPEC은 모든 거래를 중단해 시장에 충격파를 던지는 쪽보단 시장을 안정화하고, 석유에 대한 장기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또다른 형태의 시장 관리 전략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정보업체 플래츠 애널리틱스의 개리 로스 애널리스트는 역사적인 감산 합의 이후 ‘감산은 영구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다소 공격적인 발언을 했다. ‘출구 전략’은 잘못된 용어라며, 협약이 종료되는 2018년 이후에도 감산이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다만, 새로운 합의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띄게될 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시장은 ‘출구 전략’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불안정하게 매달리고 있을 것이고, 이 불안감은 궁극적으로 원유가격의 상승폭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② 러시아는 OPEC과의 동맹을 중단할 것이다.

Austria OPEC Meeting <YONHAP NO-1047> (AP)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에너지 장관(왼쪽)과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아라비아 에너지, 산업, 광물 자원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30일 오스트리아 빈 OPEC 본사에서 개최된 OPEC 정례회의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AP/연합)


감산이 미국 셰일업계만 배 불리는 전략 아니냐는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들의 불만에도 지난해 11월 러시아는 OPEC과의 감산 연장에 합의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철권 통치와 알렉산드르 노박 석유 장관의 강한 결단력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러시아는 OPEC과 달리 시장 지배력, 팡파르, 언론의 떠들썩한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덜한 편이다. 물론 러시아 역시 재정수입 감소와 유럽·아시아 지역의 점유율을 미국 셰일업계로부터 빼앗기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이유가 컸다는 분석이다. 러시아와 사우디 간 정치적 협력관계가 긴밀해지는 가운데, 러시아는 OPEC 내에서 공고해지는 자국의 위상에 만족하고 있다. 실제 지난 11월 OPEC 정례회의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두 인물은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석유장관과 노박 장관이었다.

물론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유가가 지속되는 것이 러시아 예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사우디 간 협력관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2007년 사우디가 러시아에 핵을 제공한 이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사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러시아와 사우디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감상 합의가 종료되면 유가가 급락하면서 자국의 경제상황이 원점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월가의 유력 금융블로그 제로헤지(Zero Hedge)는 "OPEC과 러시아 모두에게 불편한 진실이겠지만, 세계 에너지시장에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영원히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③ OPEC vs 美 셰일이 주요 전장이다

OPEC이 스윙 프로듀서(swing producer·글로벌 원유시장에서 자체적인 생산량 조절을 통해 전체 수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산유국) 로서의 역할을 버리고 미국 셰일업계와의 점유율 경쟁에 뛰어든 이후 둘 사이의 첫 번째 만남은 증산경쟁이 정점을 이루던 2016년 9월 알제리에서 이뤄졌다.

2014년 셰일 붕괴라는 목적 아래 사우디가 신호탄을 쏘면서 시작된 치킨게임은, 2017년 말 광범위한 공존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전면 전환했다. 3년 간의 저유가 시기를 통과하면서 양국의 상황은 초라하게 전락했기 때문이다. 오일머니로 전세계를 호령하던 사우디는 경제난에 허덕이게 됐고, 풍부한 자금에 힘입어 승승장구하던 셰일업계 역시 파산 도미노로 절벽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OPEC과 셰일을 적이라는 개념으로 규정 짓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사우디와 셰일은 이윤을 창출하고 모든 원유생산자들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미국의 석유시추업체들과 중동 산유국들 간의 대화는 눈에 띄게 늘었다. 실제로 사우디는 에너지 자산 인수를 위해 미국을 기웃거리고 있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사우디 아라비안 오일(아람코)는 미국 휴스톤 소재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업체인 텔루리언과 향후 가스를 매입하기 위한 협상을 갖고 잠정 합의를 이뤘다.

이와 별도로 아람코는 미국의 거대 석유가스 분지인 퍼미안과 이글 포드의 자산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 이 밖에도 아람코는 다수의 미국 기업들과 천연가스 매입을 위한 비공개 협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OPEC의 첫 번째 임무는 3년 간의 치열한 증산경쟁으로 사상최대치까지 늘어난 원유생산량의 폭주를 중단하는 데 있다. 또 셰일과의 협력 움직임은 표면적인 전략일 뿐, 여전히 OPEC의 숨은 목표는 투자가 자유로우며 비전통적이고 비경제적인 경쟁자를 무너뜨리는 데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OPEC은 변하지 않았고, 원유시장의 ‘붐 앤 버스트(boom and bust, 경제가 활황에서 불경기로 떨어지는 현상)’와 변동성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데 주력하고 있을 뿐이라는 해석이다.

제로헤지(Zero Hedge)는 원유시장을 사우디와 셰일 간의 경쟁구도로 보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사우디와 심해 시추업계, OPEC과 러시아 등 보다 다각적인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가령 지난 2014년 말 유가 폭락 이후 멕시코 걸프만 일대의 심해 시추 사업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지난 3년 사이 효율성이 개선되고 비용 절감에 성공하면서,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선을 유지할 경우 올해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렇게 되면 막대한 공급물량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향후 수년간 유가를 움직일 주요 변수로 부상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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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셰일오일 생산 전망. (단위=하루 1백만 배럴, 표=플래츠)



④ 셰일업계는 금세 증산할 수 있다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60달러 위로 올라섰다. 높아진 유가에 힘입어 셰일업계는 다시 무한정 증산에 나설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다.

높아진 유가 뿐 아니다. 호재는 쌓여 있다. 셰일업체들은 2018년 설비투자비용(CAPEX)을 늘릴 것으로 관측됐다. 지난 3년 간 셰일업계는 시추작업에서의 기술 혁신에 성공하고 비용을 기하급수적으로 낮추면서 저유가 환경에 거의 완벽하게 적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힘입어 플래츠 애널리틱스는 올해 미국 셰일 증산 물량이 하루 9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제로헤지는 CAPEX 증가와 비용 절감 등 모든 긍정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은 변곡점에 다다랐으며, 투자자들은 갈릴김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 최대 셰일 지대인 퍼미안 같은 경우 광구의 효율성은 2016년 7월 정점을 찍은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주요 셰일유전인 이글포드와 안다르코 역시 광구 생산성이 급격하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제로헤지는 "투자자들은 자본금을 빠르게 회수하기를 원하고 있고,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시추에 몰두하는 업계에 진절머리나 있다"며 "10년 가까이 미국 탐사생산(업스트림) 산업의 시추비용은 현금흐름을 웃돌고 있고, 부채와 자금조달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는 의미다.

생산 주체가 바뀌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현재 셰일 유전의 가장 큰 생산자는 대형석유기업이다. 저유가를 통과하며 엑손모빌, BP 등 글로벌 석유기업들이 대형 유전에서 셰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점유율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만큼, 주주들은 시장점유율보다 수익률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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