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들수첩] '높은 곳'에 대한 열망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01.19 00:23
본들수첩 사진

▲건설부동산부 최아름 기자.


사학자 마크 스미스는 ‘감각의 역사’에서 인간은 오감 중 70% 이상을 시각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숭례문 근처 대한상공회의소 옥상에서는 그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상공회의소의 직원의 출입증이 없다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나온다. 방송 뉴스의 단신 보도에 활용되는 곳들은 도심의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형태로 찍힌다. 아파트 홍보문구에는 ‘조망권’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고층 아파트는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 ‘스카이 커뮤니티’라는 개념이 유행한다.

인간은 생명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태생적으로 높은 곳을 좋아한다. 낮은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변 환경을 탐색하거나 정보를 얻기 쉽기 때문이다. 높은 곳은 근대 사회 이전부터 권력의 상징이었다.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곧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현대 사회에서 ‘높이’는 자본으로 치환한다. 그렇기에 고층 아파트일수록 웃돈이 붙는다.

아현동 일대는 언덕 지형이다. 높이 올라갈 수록 주택의 가격은 떨어진다. 소위 말하는 달동네다. 계단은 폭이 비좁고 길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어 몇 바퀴째 같은 곳을 돌아야 마을버스라도 지나다니는 아스팔트 길이 나온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서울의 서쪽을 바라보면 신촌, 홍대를 비롯한 마포구와 그 일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일단 누구든지 올라오기만 한다면 별 다른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재개발이 끝나 아파트가 들어서게 된다면 이곳은 가격을 지불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광경이 된다.

비단 조망권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한강변에 고층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이 지난해 계속 화두가 됐었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 단지는 시공사 선정 이후에도 같은 단지 내에서도 조망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높은 곳에서 누릴 수 있는 광경’이 점차 구매를 해야 하는 상품으로 바뀌고 있다. 개인의 재산권 행사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공공의 높은 곳’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최아름 기자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