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살우교각(殺牛矯角)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02.14 10:06

정범진 경희대학교 교수


정범진
우리나라 원전 24기 가운데 10기가 정지돼 있다. 원전가동률은 50%대로 추락했다. 이 기록은 우리나라 원전역사상 최저이다. 사실 우리나라 원전은 국산화된 2000년 이후 줄곧 80~90%의 원전가동률을 유지해 왔다.

원전가동률이 떨어진 원인은 ‘정비기간’ 때문이다. 원전은 통상 18개월에 한 번씩 세워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정기검사를 받는다. 그런데 2~3개월 걸리던 정기검사가 300일을 넘기는 경우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원전 사업자인 한수원은 물론이고 한전도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 2013년 납품비리 사건으로 원전이 일시 정지되었을 때 값비싼 LNG발전소 가동을 늘려 한전이 9600억원의 손실을 봤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전의 전력구입비가 증가하고 있다. 기저부하인 원전과 석탄발전 11.9GW가 동시에 정비에 들어가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LNG발전소를 가동하게 되면서 전력구입비 상승요인이 발생하고 있다. LNG 발전량이 증가하면서 지난해 10월 평균 kWh당 71.29원까지 떨어졌던 전력시장가격(SMP)은 90원 이상을 웃돌고 있다. 이에 따라서 한전의 전력구입비는 약 3조원 가량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왜냐하면 1 GW 급 원전 1기가 정지하면 한전의 전력구입비는 매일 약 11억원씩 증가하기 때문이다.

원전의 정기검사기간은 왜 이리 늘어났을까. 원자력안전법이 바뀌었는가? 아니면 특별한 안전현안이 있었는가? 그렇지 않다. 단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업무관행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달라진 관행을 예로 들어보자. 하나는 한 원전에서 규제 현안이 발생하는 경우 동일 유형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전체원전으로 확대 조사를 요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기검사 후 재가동 요건을 강화한 것이다.

어느 한 원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동일한 문제가 있는지 다른 원전에 대해서 점검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을 남발하는 것은 ‘필요 이상’의 일이 될 수 있다. 또한 원전 정기검사를 마치고 조치를 필요한 사안들 가운데 원전의 안전성과 직접적 관련이 있거나 가동 중에는 조치가 불가능한 사안에 대해서는 조치를 마친 후에 가동에 들어간다. 그러나 원전의 안전성에 직접적 관련성이 없는 것 가운데 가동 중에도 조치 가능하거나 구하는데 수년이 요구되는 부품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조치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동을 허락하는 것이 관행이다. 세계 모든 원전국이 이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관행을 바꾼 것이다. 원자력규제행정은 소수의 전문가들 간 소통을 염두하고 설계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안전규제에 참여하는 전문가는 다해야 700명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이 분야별로 나누어 보면 십 수명의 정도의 인원이 소관 하는 규정체계를 가지게 된다. 이들 규정은 전혀 다른 분야에 종사하거나 원자력안전규제라는 특수한 분야에 대한 종사경험이 없는 안목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이 지금까지 40년간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면, 중용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관행을 유지하면서 관행의 타당성을 확인해야지 관행의 타당성이 확인되기 전에 관행을 먼저 바꿔버리는 것은 곤란하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 원전의 가동률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뚝 떨어진 것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새 정부의 눈치를 본다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이건 국민이 원하는, 국가에 이득이 되는 원자력안전규제의 독립성과는 거리가 있다.

삐뚤어지게 자란 소의 뿔을 바로잡는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조치이다. 그러나 소의 뿔을 바로잡다가 소가 죽는다면 이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소를 죽이기 위해서 뿔을 바로잡는 살우교각(殺牛矯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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