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새는 한쪽 날개만으론 날지 못한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02.19 16:17
윤덕균 교수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윤덕균


새는 한쪽 날개만으론 날지 못한다. 그런데 보수는 우익만으로 날려고 하고 진보는 좌익만으로 날려고 한다. 이것이 정국불안의 핵심요소다. 보수와 진보를 새의 날개로 표현한 의미를 망각한 결과다. 이는 보수의 가치와 진보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함에서 연유한다. 근대 시민사회에서 자유는 민주주의의 추진동력을 주고 평등은 균형감각을 준다.

그래서 보수 우익은 자유에 가치를 두고 진보 좌익은 평등에 가치를 추구한다. 내면적으로는 우익의 자유 가치를 강자의 논리라면 좌익의 평등가치는 약자의 논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 개의 날개로 새가 날 수 없듯이 민주사회도 두 개의 날개는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것이다. 그런데 진보와 보수는 가치 논쟁은 실종된 채 빨갱이, 파쇼 도당의 원색 투쟁에 몰두한다.

시민사회의 핵심적 가치는 자유와 평등의 개념으로 구성된다. 자유는 시민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자유로운 사고 속에서 창의적 사고가 나오고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경제성장을 위해서 자유를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보수 우익이다. 국가의 이익(공화)을 위해서는 엘리트의 무한 자유를 필요로 한다.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위해서 정부의 규제를 철폐한다.

아울러 보수는 작은 정부를 추구하고 야경국가답게 치안과 국방에만 집중한다. 공무원의 증원을 반대하고 세금을 감면한다. 소수 엘리트의 수월성 교육을 통해서 국가이익(공화)를 추구하고 최종 목표를 ‘잘 사는 사람이 많은 나라’로 세운다. 그래서 평가지표로 성장지표인 GDP를 선호한다. 그러나 이러한 강자의 논리인 우익적 사고만으로는 ‘잘 사는 사람이 결국 잘 살게’ 되며, 부의 대물림 하에서 발생하는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의 갈등구조를 해결하지 못한다.

반면 진보 좌익은 평등을 기본가치로 한다.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선험적 진리 아래 개인의 평등을 위해서 국가권력을 적절히 활용해 균등점을 추구한다. 평등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진보는 증세를 통한 정부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큰 정부를 지향한다. 결과적으로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못사는 사람이 없는 복지국가’를 지향한다. 흑수저와 금수저로 표현되는 갈등구조 개선을 위해 치안 및 국방보다는 보건, 복지 교육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

기회균등을 위해서 배고픈 사람에게는 무상급식을, 못 배운 사람에게는 무상교육을, 병든 사람에게는 무료 의료를 제공한다. 그래야 금수저와 흑수저가 최소한의 공정한 게임이 된다. 경제 민주주의를 위해서 기업의 규제를 강화한다. 최저임금을 높이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전체적으로 노조 친화적인 행정을 운영한다. 평가지표로 분배정의 지표인 지니계수를 쓴다. 이러한 분배의 논리는 필연적으로 효율과 창의성의 희생을 강요하고 생산력을 저하시킨다. 그래서 좌익 날개만으론 일자리를 창출 등 성장 동력을 얻을 수 없다.

보수가 극단이면 소수 엘리트주의의 전체주의를 거쳐 파시즘으로 진화한다. 마찬가지로 진보가 평등에만 가치를 두면 공산주의를 거쳐 아나키즘에 빠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나키즘과 파시즘은 속성적으로 동일한 독재다. 즉 스탈린이나 히틀러의 속성이 동일한 것이다. 모두 민주 시민사회의 공적이다. 진보는 극단적으로 빨갱이, 보수는 파쇼도당이 돼서는 안 된다. 민주 시민사회를 지탱하는 양대 지주가 돼야 한다. 그래서 최근의 문재인 정부는 규제완화 등 우클릭에 방점을 둔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 미국과 FTA를 성사시키고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하는 등 성공적인 우클릭의 추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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