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철강 통상압박 '코 앞'…韓 철강업계 '돌파구' 마련하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02.19 16:18

▲미국이 한국산 철강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조짐을 보여 국내 철강업체들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19일 충남 당진의 한 공장 공터에 열연코일 제품들 쌓여 있다. (사진=연합)


미국이 철강 분야에 대한 고강도 통상 압박을 현실화하자 국내 철강업계가 앞다퉈 돌파구 마련에 나서 주목된다.

미국 상무부가 한국을 포함한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거나 쿼터(할당)를 제한하는 방안을 실행할 경우, 철강업계는 당장 대미 수출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WTO 제소를 검토하는 한편, 주요 철강업체 및 협회 관계자들과 함께 협심해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발동에 대응하기 위한 민관합동 대책회의를 개최하는 방식으로 대응해나가고 있다. 특히 유관기관과 각 철강업체들은 이 같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불합리한 조치를 표방한 미국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 정부 "WTO 제소 검토 中…확정되진 않아"

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무역확장법 232조 보고서에 대한 WTO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국내 철강과 변압기에 대해 미국이 불합리한 가용정보(AFA)를 적용해 고율의 반덤핑 및 상계관세를 부과한 조치에 대해서도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배로 판단, 지난 14일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 절차에 회부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번에 발표된 상무부 건의안은 총 세 가지로 △브라질·중국·코스타리카·이집트·인도·말레이시아·한국·러시아·남아공·태국·터키·베트남 등 12개국에 최소 53%의 관세를 적용하거나 △모든 국가에 일률적으로 24%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국가별 대미(對美) 철강 수출액을 지난해의 63%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러한 조사 내용을 토대로 어느 방안을 적용할 지 오는 4월 11일까지 결정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WTO 제소는 검토를 해봐야 하는 사항"이라며 "현재 미국으로부터 권고안이 나온 단계이며 조치가 발동된 것은 아니다. WTO 제소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업계와 함께 미 정부, 의회, 업계 등에 대해 아웃리치 노력을 경주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상무부가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따른 철강 수입 안보 영향 조사 결과와 조치 권고안을 발표하자, 지난 17일 백운규 산업부 장관 주재로 민관 합동대책회의를 개최, 상무부의 232조 조치권고안 내용을 공유하고 각 조치권고안 별 영향 분석 및 향후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와 업계는 미국 정부가 수입산 철강에 대해 관세 및 쿼터 등의 조치를 실시할 경우, 대미 철강 수출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 철강협회, "대응TF 구성"…무협, "정치적 판단 개입"

▲19일 충남 당진의 한 공장 공터에 열연코일 제품들이 쌓여 있다. (사진=연합)


한국철강협회는 강도 높은 미국의 통상 압박 수위에 대해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 대비책을 마련하고 향후 결정되는 사항에 대해서 대응해나갈 계획이다.

철강협회 관계자는 "우선 TF 구성만 완료된 상태"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세 가지 권고안 중 선택한다는 보장도 없으며 그보다 심한 제재를 내릴 가능성도 있기에 준비를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회의를 하면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무역협회는 상무부에서 내려진 결정에 정치적 판단이 개입됐다고 판단하고, 불합리한 조치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갈 방침이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무역확장법 232조 자체가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며 "국내 안보 이슈라고 하지만 중간 선거, 즉 표심을 생각한 정치적인 움직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 무역정책들을 전반적으로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여러 면에서 견제를 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제현정 무역협회 통산지원단 연구위원은 상무부에서 발표된 권고안 중 세 번째가 가장 나은 옵션이라고 평가하는 한편, WTO 제소를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 연구위원은 "반덤핑 상계관세가 대부분 (제품에 대해) 내려진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니, 굉장히 부담이 크며 과한 조치에 해당한다"며 "그래도 쿼터(할당)의 경우, 물량을 주는 것이니 셋 중에 그나마 제일 나은 옵션"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여태까지 232조 조사가 있었지만, 이렇게 센 것은 선례가 없는 경우"라며 "WTO 제소를 하긴 해야 한다. 다른 나라와 공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철강 빅3,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대응할 것"

국내 철강업계는 우선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보고서에서 명시한 12개 국가에 한국이 포함된 탓이다. 우리나라와 증가 폭이 비슷한 독일(40%)과 3배 수준인 대만(113%)은 빠졌다. 우방 국가들의 경우 규제 대상국에서 대부분 제외됐지만 중국·러시아·브라질·터키·남아공·태국 등이 대거 포함됐다.

송재빈 철강협회 부회장이 "이번 보고서 공개 결과가 상당히 당혹스럽다. 12개국 선정에 대해서 기준이 무엇인지, 왜 한국이 포함돼야 하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국내 철강사 ‘빅3’(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는 미국발(發) 수입제한 조치에 따른 타격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이번 건을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해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해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의 미국 매출 비중은 각각 2~4% 정도로 추산된다.

포스코 관계자는 "당사가 진출한 지역의 주정부와 수요 업계를 대상으로 투자법인 소재 제외의 필요성 및 지원 요청에 총력을 다하는 동시에, 미국 정부, 의회, 업계 등에 대한 아웃리치(접촉) 노력과 철강 무역규제 확산 방지를 위해 각국 정부와의 공조 강화에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제철 역시 "미국향 수출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 정도로, 영향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며 "다만 한국 철강업계에 안 좋은 영향은 분명하다. 특히 국내 중소 철강업계에 대한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이어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신시장 개척과 수출지역 다변화 그리고 업계 및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동국제강의 경우 추후 결과에 따라 미국향 수출 비중을 조정할 시나리오도 검토 중이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많지 않지만 결과에 따라 수출 비중을 조정할 수도 있다"며 "최종 결정이 나오고 나서 본격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한편,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무역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1962년 미국 기업 보호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발족 이후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 송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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