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이 비트코인 발행한다면...원자재 가상화폐 성공할까?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02.21 11:56

베네수엘라 정부, 20일부터 가상호화폐 ‘페트로’ 사전 판매
1토큰당 원유 1배럴과 연계…최초가격은 60달러
마두로 대통령, OPEC에 새 가상화폐 공동발행 제안
"OPEC 가상화폐 발행 시 글로벌 금융·에너지 시장 파급력 막대할 것"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한화 8경 원의 원유를 보유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가상화폐를 발행한다면? 한 가상화폐 전문가가 원유 기반 가상화폐의 영향력을 전망해 주목된다. 미국 가상화폐 전문매체 크립토 인사이더의 마이클 컨 전문가는 OPEC이 가상화폐 발행에 나설 경우 에너지 시장은 물론이거니와 전세계 금융시장에 새 시대가 열릴 것으로 관측했다.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Utopia) 아닐까. 그러나 OPEC 회원국 중 하나인 베네수엘라가 20일(현지시간)부터 사전 판매를 시작한 데다, 미국 셰일업계의 도전이 거세진 상황인 만큼 비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 정부 주도 가상화폐 발행하는 베네수엘라…"부패 맞춤형" 거센 비판

지난 해 말 전세계를 달군 비트코인 열풍이 어느 정도 잦아든 듯 하지만, 가상화폐는 광범위한 영역으로 발을 넓혀가고 있다. 개별 기업이 발행한 코인, 정부 주도 코인, 심지어 원자재 기반 코인까지 다양한 종류의 가상화폐가 시장에 넘쳐난다. 그 중 가장 뜨거운 논란을 야기한 것은 단연 베네수엘라 정부가 발행한 원유 연계 가상화폐 ‘페트로’다.

앞서 지난해 12월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 제재로 인한 베네수엘라의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원유 기반 가상화폐 페트로 발행을 선언했다. 정부가 주도해서 암호화폐를 파는 것으로는 세계 최초다.

현지 통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20일부터 다음달 19일까지 3840만페트로를 사전 판매할 계획이다. 총 발행 물량은 1억페트로이며 그 중 38.4%를 특정 집단에게 먼저 파는(private sales) 것이다. 나머지는 공개 매각(public sale)될 예정이다.

페트로는 토큰 1개당 1배럴의 원유와 연계되며 최초 판매가격은 지난 1월 중순의 원유 1배럴의 가격인 60달러로 책정됐다. 발행량은 총 1억 개로, 페트로 가치는 베네수엘라의 석유, 천연가스, 금, 다이아몬드 등 원자재 매장량을 통해 담보된다. 페트로는 기존의 가상화폐들과 달리 사전에 미리 채굴된 후 판매되기 때문에 새로운 토큰이 생성되지는 않을 예정이다.

페트로 판매를 통해 경제 혼란을 극복하고, 카타르, 터키 등 중동 국가들과 유럽, 미국에서 투자를 유치할 것이라는 마두로 대통령의 야심과는 달리 페트로는 출발부터 쉽지 않았다. 페트로는 지난 해 발행 계획을 밝힌 시점부터 사전 판매를 시작한 이 날까지 지구상 거의 모든 국가로부터 강력한 비판에 시달렸고, 심지어 베네수엘라의 의회 내부에서도 가상화폐가 불법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베네수엘라 야당 의원인 호르세 밀레조차 "페트로는 가상화폐가 아니라, 베네수엘라 원유 선물 판매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비상금 저축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어, 부패정권이 사용하기 알맞춤"이라며 날선 비판을 가했다.


◇ 마두로, OPEC에 가상화폐 발행 공동제안 …받아들일까?

그러나 쏟아지는 국제 금융계와 내부의 우려에도 마두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 달 "80만 명의 베네수엘라인들이 이미 가상화폐 채굴에 지원했다"며 "이들을 가상화폐 특별팀이라고 이름 붙이고, 모든 주와 지자체에 가상화폐 채굴장을 설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MADURO OPEC

▲베네수엘라 정부 측에서 공개한 사진으로, 지난 5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에서 진행된 회담 이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오른쪽)과 무함마드 사누시 바르킨도 OPEC 사무총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AFP/연합)

마두로 대통령은 사전 판매를 앞두고 계획을 한층 진전시켰다. 세계 최대 석유 카르텔인 OPEC(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에 가상화폐 공동 발행을 제안한 것. OPEC은 세계 원유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이 OPEC의 공동참여를 위해 애쓰는 이유다.

현지 라디오방송 알 자지라(Al Jazeera)에 따르면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 6일 무함마드 사누시 바르킨도 OPEC 사무총장과의 회담에서 "OPEC에 속하지 않는 비산유국들에도 공동발행을 제안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회담 후 취재진들과의 인터뷰에서 "바르킨도 총장에게 페트로의 이점에 대해 잘 설명했다"며 "가상화폐는 세계의 미래다. 나는 페트로 발행을 앞두고 베네수엘라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 베네수엘라 페트로, 중·러 이어 美 페트로달러에 ‘도전장’

베네수엘라의 페트로 발행을 산유국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통화전쟁의 일환으로 보는 해석도 나온다.

서구사회 밖에서는 페트로달러(petrodollar)의 카르텔을 무너뜨리려는 거센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이다. 중국은 자국화폐 위안의 기축통화 지위 자리를 노리면서 미국 달러를 밀어내려는 속셈을 보이고 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이르면 3월 초 상하이에서 원유선물 거래를 개시함으로써 석유거래 화폐인 미 달러, 즉 ‘페트로달러’를 ‘페트로위안(petroyuan)’으로 밀어내겠다는 의도를 자주 드러냈다. 중국의 목표는 위안화로 거래되는 원유 선물 출시를 통해, 세계 주요 원유 생산업체들이 원유를 위안화로 거래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페트로달러 무너뜨리기에는 러시아도 가세하고 있다.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인 중국과 달리 에너지 수출국인 러시아는 OPEC 회원국이 아니면서도 국제유가를 좌우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러시아는 오는 2019년 말부터 길이가 3000㎞인 가스관을 통해 시베리아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30년 동안 중국에 공급할 예정인데, 주목할 것은 두 나라가 달러가 아닌 위안이나 루블로 거래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또 사할린에서 일본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해저가스관을 건설 중이다. 여기서도 러시아는 일본에 달러 대신 엔으로 거래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컨 전문가는 "그간 페트로달러의 왕위를 뺏으려는 시도는 빈번히 있어왔지만, 이 정도로 거센 도전은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 ‘8경원’ 석유 보유한 OPEC, 가상화폐 발행시 파급력은…

가상화폐가 기존 금융 시스템에 편입될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내부 구조는 더욱 복잡한 모습을 띄는 양상이다.

지난 2014년 쿠웨이트의 정부 관리들이 원유를 비트코인으로 거래하기 위한 플랫폼 건설을 제안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모든 것을 가상화폐로’라는 사고방식이 시장을 강타하면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OPEC 원유 기반 가상화폐가 현실화될 경우 시장 전체를 뒤흔들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는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중요한 산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OPEC은 세계 원유매장량의 81%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현시세 기준 약 74조 달러(한화 7경 9180조 원)에 해당한다.

문제는 원유를 둘러싼 정치공학이 복잡하기 때문에 가상화폐를 발행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하지만 미국의 셰일 붐으로 석유 카르텔에 실존적 위협이 가해지고 있는 가운데, 중동의 거대한 블록체인 X 재생에너지 계획이 맞물리면서 예상보다 빠르게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

현시점에서 OPEC 가상화폐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될 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는 어려우나, OPEC의 막대한 석유 거래규모와 지정학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에너지 무역과 세계 금융시장 양 측면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 원자재 기반 가상화폐 미래는?…"아직은 캄캄"

BITCOIN

▲비트코인. (사진=AFP/연합)


OPEC에 대한 마두로 대통령의 제안 성사 여부와 별개로 글로벌 원자재 무역의 상황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석유 외에 금, 다이아몬드 등 원자재 기반 가상화폐가 이미 시장에 출시된 상태다. 이들은 모두 ‘변동성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이점을 갖고 가상화폐 세계에 진출한다’는 동일한 목표를 갖고 출발했다. 많은 이들이 실패로 돌아갔고, 심지어 규제당국으로부터 폐쇄된 사례도 있다.

원자재 기반 가상화폐가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 지 아직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많은 기회주의적 투자자들은 신흥국 시장에서 가상화폐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기면서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컨 전문가는 "가상화폐의 앞길에 장애물들이 많이 놓여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많은 이들은 가상화폐를 둘러싼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컨 전문가는 "불투명하고 복잡한 원자재 업계의 문제를 가상화폐가 정화시키는 데 성공하든 실패하든, 원유시장 거래를 투명하게 하고 책임을 부과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 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자신을 가상화폐의 옹호론자라고 밝히면서 "가상화폐 도입 과정에서 겪어야 할 시행착오들이 많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상화폐가 일상에서 거래될 수 있는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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