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한 반도체·휴대전화·TV...美보호무역 물결 휩싸이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02.22 07:46

'통상'과 '안보' 균형 설득이 핵심


미국이 대미 수출 품목에 대해 도를 넘는 통상압력을 가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미국의 통상압력이 반도체나 TV, IT기기, 자동차 등 다른 주요 수출 품목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모듈에 대해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발동한데 이어 한국산 철강 제품에 대해서도 강력한 수입규제안을 발표했다.

특히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당초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세탁기의 경우 수입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권고했지만, 이번 세이프가드는 한국에서 만든 제품도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또 ICT는 저율관세쿼터 할당 내 물량인 120만대에 무관세를 적용할 수 있다는 권고를 함께 제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할당 물량인 120만대에도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기업들은 다음 불똥이 어느 쪽으로 튈 지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전문가들은 대미 수출비중이 높은 반도체, 스마트폰, TV 등도 미국 보호무역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작심 규제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대외무역은 꾸준히 상승세를 유지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지난해 12월 국내 814개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년 1/4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EBSI) 조사’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EBSI는 100.8을 기록, 2014년 2/4분기 이후 처음으로 4분기 연속 100을 상회했다. 비록 그 증가세는 둔화됐지만 한동안 수출 상승세는 계속되리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이 같은 장밋빛 전망치는 현재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우리나라 수출의 경우, 원화 환율 강세와 보호무역주의 기조의 지속으로 수출채산성(94.9)과 수입규제통상마찰(92.7)이 소폭 악화될 우려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미 미국이 한국산 철강 제품에 대해 최대 53%라는 높은 관세를 추진하는 등 통상압력을 가하고 있는데다 같은 논리를 들어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에도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휴대전화는 지난해 총 61억 9200만 달러를, 반도체는 지난해 총 33억 7700만 달러를 미국에 수출했다. 오히려 철강보다 수출액이 큰 만큼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는 미국의 좋은 타깃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기업들이 세계 최대의 프리미엄 시장인 미국에서 무역제재를 받을 경우 매출 감소는 물론 브랜드 이미지 등에서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미국의 고강도 통상압력에 대해 대응할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우기훈 창원대 글로벌비즈니스학부 교수(前 코트라 부사장)는 "우리나라가 수출로 최대 흑자를 보고 있는 나라가 중국과 미국인데 미국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흑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무역은 상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며,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해 미국이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어 쉽게 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그간 ‘통상’과 ‘안보’라는 두 자루의 칼을 쥐고 번갈아가며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 다른 나라들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안보를 위해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으로부터 구입한 무기 액수는 36조 원에 이른다. 이는 단일국가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여기에 추가로 차세대 전투기(FX) 사업에 10조 원 이상 지불해야 하며, 주한미군의 대표부대인 미8군 사령부의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하는데 드는 비용 총 17조 1000억 원 중 8조 9000억 원을 한국이 지원한 점도 미국에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의 (군사) 장비 등을 주문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대미) 무역 적자가 해소되길 바란다. 우리는 수많은 나라와 무역적자 (관계)가 이뤄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무역적자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역대 최대 규모 무기 수입을 통해 미국의 무역 적자분이 상쇄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호소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 교수는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서비스 무역에서는 계속 적자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비스 무역이란 법률이나 지적재산권 등을 의미하는데, 상품 무역에서는 미국이 적자를 보고 있지만 서비스 무역에서는 크게 흑자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우 교수는 "안보를 위한 미국 무기 구매, 그리고 서비스 무역의 총체적 적자 등을 곁들여 균형 있게 미국을 설득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미국의 억지에 가까운 통상압력에 대해 WTO에 제소하더라도 당장 바뀔 것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우 교수는 "WTO에 제소해도 잠정관제라는 게 있어 미국이 주장하는 관세를 적용받게 된다. WTO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2∼3년간 미국이 요구하는 관세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를 피할 수는 없다. 통상문제 하나만 가지고 부딪히기보다 안보 문제를 함께 아우르는 설득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에너지경제신문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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