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창업디렉터 |
한국은 실패에 인색한 나라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감동 어린 문구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 뉴스 헤드라인에 나오는 문구 일 뿐, 한국의 현실에선 도통 실패가 ‘잘 싸웠다’로 귀결되지 않는다. 실패해 본 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실패는 쓰라리며 때론 참혹하고 대개가 비극이다. 하지만 우리 생의 도처에는 무수히 많은 실패가 깔려 있다. 그 수많은 실패들을 마주쳤을 때마다 비극의 순간을 연출한다면 이 얼마나 피곤한 삶인가. 실패는 인생의 한 과정이어야 한다. 내내 곱씹으며 자신을 갉아먹게 하지 말고 무심히 물에 흘려 보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단순한 진리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실패를 무심히 흘려 보내지 못하는 이 시대 많은 이들이 알아두어야 할 옛 글귀가 있다. 맹자의 ‘고자장(告子章)’에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천장강대임어사인야(天將降大任於斯人也)인대 필선노기심지(必先勞其心志)하고 고기근골(苦其筋骨)하며 아기체부(餓其體膚)하고 궁핍기신행(窮乏其身行)하여 불란기소위(拂亂其所爲)하나니 시고(是故)는 동심(動心)하고 인성(忍性)하여 증익기소불능(增益其所不能)이니라."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이렇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은 빈곤에 빠뜨리고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그 이유는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며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맹자의 고자장은 조선시대 고위 벼슬아치들이 어떠한 잘못으로 저지른 후 외딴곳에 유배 되었을 때 유배지 방 벽에 걸어놓고 고난을 이겨 냈다고 전해지는 글이다. 비단 우리 나라뿐만 아니다. 한자(漢字) 문화권 국가의 유배된 선비들은 물론 중국의 등소평이 고난의 시절에 마음 깊이 새기며 쉼 없이 암송하였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옛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어 줬다는 방증일터다. 혹자는 고자장이 없었으면 많은 이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다고 전한다. 그만큼 고자장에 녹아 든 위로의 메시지가 더없이 강력했으리라. 오늘날처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위로와 힐링의 메시지를 받을 수 없었기에 그 위력이 더욱 배가가 됐으리라 생각한다.
사진과 영상의 홍수 속 요즘 사람들에게 옛 글귀가 뭔 소용이 있겠냐 마는 고자장 속에 녹아 들어 있는 실패에 대한 고찰은 한번쯤 꼭 되새겨 봄 직 하다. 뭔가를 해보려고 할 때마다 일이 꼬이고, 사람이 도와주지 않고, 돈이 모자라고, 관계가 틀어지는 사람들일수록 반드시 새겨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새겨듣는 것 이상으로 마음 속에 항상 간직하고 종교처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업을 하기에 작금의 불경기는 분명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젊은 세대들은 취업을 못해 안달이고 아버지 세대들은 은퇴를 종용하니 마음이 불안한데,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지갑이 쉽사리 열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런 와중에 최저임금은 올라가고 장사하는 이들을 위한 마땅한 대안도 정부에서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창업은 실패와 더 가까운 행위일수도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창업을 하고 경영을 해서 직접 이 불경기를 온 몸으로 맞닥뜨린 이들이 실패라는 결과물을 받아들였을 때, 너무 아파하지 말길 바란다.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겨라’라는 말처럼 실패를 물에 새겨 흘려 보내길 바란다. 실패는 인생의 한 과정이고, 후에 더 큰 성공을 위한 든든한 밑거름이라고 위안을 삼았으면 한다.
여러 번 실패했다고 패배자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가 경험했던 그 무수한 실패가 우리 안에서 단단한 마음을 만들어 준다. ‘실패’는 더 이상 흉이 아니라 커리어다. 두드려 맞으면 맞을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철의 속성처럼,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수많은 실패의 망치들을 두려워 말자. 이왕 맞을 것 더욱 더 세차게 세상이 내려치는 망치를 맞자. 그래야 당신과 나 우리의 삶이 더욱 극적인 해피엔딩이 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