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권력형 성폭력 2차 피해 근절 위한 시민사회 역할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04.17 14:14

심리연구소 함께 김태형 소장.

▲심리연구소 함께 김태형 소장.



한국사회에서 미투운동이 활발해지자 미투 주체들에 대한 2차 가해 역시 증가하고 있다. 이를 근절시키려면 미투운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확산시키고 미투 주체들을 지원하기 위해 시민사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

미투운동을 지지, 지원하려면 무엇보다 권력형 성폭력의 본질부터 정확히 알아야 한다. 권력형 성폭력의 본질은 힘 혹은 지위를 악용한 약자에 대한 학대 행위라는 데 있다. 권력을 악용한 학대 행위는 사회적 맥락에 따라 성적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권력형 성폭력이다. 권력형 성폭력의 본질이 힘을 악용한 학대라는 것은 권력형 성폭력이 남녀 간의 문제도 아니고 성적인 일탈의 문제도 아닌 ‘사회적 문제’임을 의미한다. 또한 권력형 폭력, 학대의 피해자가 단지 여성만이 아닌 남녀노소를 망라하는 다수의 약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에서 권력형 성폭력이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것은 불평등한 인간관계를 초래하는 반민주적인 조직문화가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조직문화는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조직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일본의 군국주의 조직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조직문화이다. 반민주적 조직문화 속에서는 위계를 악용한 폭력과 학대가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 군대에서 하급자를 괴롭히다 못해 죽게까지 만들었던 윤일병 사건, 대학교수가 대학원생에게 인분을 먹도록 강요했던 충격적인 사건 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은 한국사회가 반민주적 조직문화를 개혁하지 못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는 해방 이후 장기간 동안 반민중적 집단이 권력과 부를 독점해왔고 그 결과 민주주의가 거의 실현되지 않았다. 물론 한국인들은 독재자를 민중항쟁으로 타도해온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가능했던 것은 집권자나 집권세력의 교체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민주적 제도를 쟁취했던 것이지 모든 분야에서의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한국인들은 상층 민주주의는 실현했지만 기층 민주주의는 실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인들은 광장에 촛불을 들고 나갈 때에는 세상의 주인이지만 현실, 일상에서는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항쟁을 통해서 바꿀 수 있었지만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 CEO, 교장, 상급자 등은 전혀 건드리지 못하는 무력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상층 민주주의는 상당 부분 실현되었으나 기층 민주주의, 일상 민주주의는 거의 실현되지 않은 부조리한 상황은 반민주적 조직문화를 온존시켰고 그 결과 권력형 학대가 일상화되었다.

오늘날 한국에서 최약자라고 할 수 있는 여성들의 미투운동은, 더 이상은 반민주적 조직문화와 그로 인한 권력형 학대를 묵인하지 않겠다는 한국인들의 시대적 요구를 대변한다. 민중항쟁에서의 승리는 오랜 기간 동안 민중을 짓눌러왔던 무력감, 자기혐오 등을 완화시키고 치유해주는 효과가 있다. 이런 점에서 1987년의 6월 항쟁 이후에 최약자였던 노동자들의 7~9월 대투쟁이 폭발했던 것과 2017년의 촛불항쟁 이후에 최약자인 여성들의 미투운동이 폭발한 것은 동일한 맥락의 사회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87년의 노동자대투쟁이 한국에서 기층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면 오늘날의 미투운동은 그것을 계승, 완성하기 위한 중요한 사회적 실천이다. 따라서 미투운동은 여성들의 운동을 넘어서 사회 전반으로 확대, 발전되어야 한다. 반민주적 조직문화로 인한 권력형 학대의 피해자인 남성들은 단지 ‘With You’에 머무르지 말고 여성들과 힘을 합쳐 미투의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작금의 미투운동이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21세기의 민주화운동’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미투운동을 군국주의적이고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로 개혁하는 광범위한 사회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동시에 미투 참여자들, 내부고발자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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