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View] 낮아진 태양광, 풍력 발전단가…에너지 시장, 다음 이슈는 ESS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05.23 07:48

태양광 풍력 발전단가 하락세
석탄 원전대비 유연성 뛰어나
전력저장후 부족시 고비용 판매
호주, 대규모 수력발전 눈돌려


▲남호주 애들레이드에서 북쪽으로 200km 떨어진 제임스타운에 설치된 100MW/129MWh 규모의 ESS. (사진=AFP/연합)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곤두박질치는 태양광과 풍력 비용이 세계 에너지 시장의 역학구도를 바꿔놓고 있는 가운데, 향후 10년 간 에너지 시장을 지배할 이슈는 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 하락이 아닌 전력 저장 문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왜 그런지 궁금하다면 화석연료와 태양광, 풍력과의 차이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력생산 분야에서 태양광 패널과 풍력 터빈은 석탄 등 여타 경쟁 발전원과 달리 거의 유일하게 대량생산이 가능한 제품이다. 태양광 패널과 풍력 터빈은 무어의 법칙(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하고, 가격은 2분의 1로 하락한다는 법칙)의 적용을 받고, 가정용품과 의류와 마찬가지로 생산량이 늘어남에 따라 가격은 내려간다. 반면, 전통적인 의미의 발전소는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이같은 효율성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재생에너지 전력 설비를 신규 건설하는 비용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실제 미국 뉴욕 소재 투자자문 자산운용사 라자드(Lazard Inc.)가 지난 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가장 비싼 태양광과 풍력 프로젝트가 가장 저렴한 석탄 발전소보다 더 낮은 비용에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 멜버른 소재 전력회사 에너지오스트레일리아(EnergyAustralia Pty)의 캐서린 타나 CEO는 시드니에서 개최된 블룸버그 투자자 컨퍼런스 자리에서 "호주에서 석탄보다 재생에너지가 저렴해졌다는 것은 세계 최대 석탄 수출국이 더이상 석탄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를 건설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미국 플로리다 소재 전력회사 넥스트에라 에너지(NextEra Energy Inc)의 짐 로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투자자 컨퍼런스에 참석해 "2020년 초까지 재생에너지 비용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낮아지면서, 기존에 존재하는 석탄이나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는 비용보다 태양광, 풍력 발전소를 새로 건설하는 비용이 더 저렴해질 것"이라 예측했다.

▲중국, 인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에서 석탄에 대한 신규 태양광 발전단가 프리미엄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인도에서는 태양광 단가가 석탄보다 더 저렴해졌다. (단위=MWh당 달러, 그래피=에너지경제신문DB)


석탄업체들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소식들만 가득하지만, 관련 업계는 아시아 신흥국들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향후 10년 간 석탄 최종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는 아시아 신흥시장에서조차 석탄 대비 재생에너지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석탄이 시장에서 퇴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지나치게 발전단가가 저렴해지는 것도 문제다. 재생에너지로 생산되는 전력이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남아도는 전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잉여 전력은 기존 석탄 발전에서는 없었던 일이었다. 석탄발전은 전력이 남아돌면 발전을 중단하는 식으로 인공적인 조절이 가능했으나, 풍력과 태양광 발전은 자연에서 에너지를 공급받기 때문에 켜고 끄는 것이 불가능하다.

특히, 이달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발표한 모든 신규 건물 옥상에 태양광 패널 설치를 의무화한다는 규정이 2020년 시행되면 문제가 한층 커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태양광 시설 설치 의무화 규정으로 인해, 이미 공급과잉 상황인 캘리포니아 주 오후의 전력 시장이 한층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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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전력공급이 풍부할 때 독일 내 전기요금은 급락했다. 10월 23일∼10월 29일까지 일일 전기요금(유로/MWh), 재생에너지(GW), 화석연료(GW), 원자력(GW), 기타(GW).(단위=표=BNEF)


바로 ESS가 필요한 이유다. 대부분의 전력시장은 분 단위 경매 형태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전력그리드는 어떤 발전원으로 생산된 전기이든 가장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 보급이 대중화되면, 전력 소매 가격은 제로에서 때때로 마이너스 영역까지 떨어진다.

전통적인 발전업자들에게 끔찍한 소식이다. 전력을 생산한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에 팔아야 하거나, 일시적으로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쪽을 택하든 공장 가동률을 낮추고 자본이익률 (return on capital, ROC)이 현저히 하락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결과는 같다.

그러나 만약 ESS 운영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난 해 세계 최대 전기차 회사 테슬라가 남호주 애들레이드 외곽에 리튬이온 배터리 공장을 설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마이너스 전기요금은 ESS 운영업자들에게 기회로 작용한다. 태양광 셀을 충전하고 방전하는 비용을 충당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즉, 통상 기저부하(베이스 로드)로 사용되는 석탄이나 원전 대비 유연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전력이 남아돌 때 저장했다가 부족할 때 비싸게 판매할 수 있다.

천연가스 피크 발전소 역시 석탄이나 원전보다 더 빠르게 가동을 시작하고 중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ESS와 비슷한 이점이 있다.

그러나 가스 터빈의 수익성은 발전소가 태우는 메탄의 가격으로 제한된다. 화석연료이기 때문에 원자재인 메탄 가격이 비싸지면 발전소가 얻을 수 있는 수익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ESS 같은 경우 원자재에 연동하고 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100% 이상의 수익을 거두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최근 ESS를 논의할 때 배터리 저장을 지칭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ESS가 단순히 배터리만 의미하는 건 아니다. 배터리 저장은 상대적으로 비싸고 크기가 작아 몇 초에서 몇 시간 단위의 단기 수요에 적합하다는 한계를 갖는다.

세계최대 규모의 ESS 프로젝트는 배터리가 아닌 수력발전소로, 전력이 남아돌 때 값싼 전기를 이용해 오르막 저수지로 물을 이동시키고, 전력요금이 최고점에 달하는 순간 물이 떨어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영국 리버티하우스그룹의 회장인 산지브 굽타 CEO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호주 정부는 ‘스노위 하이드로 2.0 프로젝트’를 통해 대규모 수력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며, "에너지오스트레일리아와 리버티그룹 역시 벤처 설립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외에 지하동굴이나 수중 방광(주머니)에 공기를 주입하거나, 연소에 더 적은 시간이 소요되는 바이오연료나 수소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전력 수요 면에서도 피크 시간 대에 스위치 끄기 운동, 송전망 개선, 광범위한 발전 자산 통합 등의 방식이 잉여 재생에너지 전력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피클링 블룸버그개드플라이 에너지 전문가는 "재생에너지의 급감하는 발전단가가 공급과잉을 야기해 전력시장을 망칠 것이라는 반대세력의 지적은 일견 타당하다"면서도 "그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비싸고, 궁극적으로 재앙에 가까운 화석연료 소비를 지원하는 정부의 정책과 방향을 같이하고 있는데다, 청정에너지 시장으로부터의 후퇴라는 점에서 궁극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풍력과 태양광, 천연가스가 지난 10년 간 전세계 에너지 분야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켜 왔다"며, "ESS 비용이 너무 높아 아직까지 상용화 가능한 단계는 아니지만, 향후 몇 년 간 ESS 시장에서는 재생에너지와 비슷한 양상이 펼쳐질 것"이라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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