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환 한국외대 초빙교수 |
그런데 최근 이 사업이 미 재무부와 국무부 대러시아 제재 담당자들에게 골치 아픈 현안으로 등장했다. 투자자 중 하나인 ‘러시아 직접 투자기금’(RDIF)이 대러 경제제재 대상에 포함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RDIF는 외국 기업의 프로젝트에 직접적으로 돈을 투자하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금융투자 기관이라 제재 대상 여부에 대한 판단과 향후 신규 투자 허용의 여부는 면밀한 관찰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RDIF가 제재대상인지 여부는 사실 판단이 어렵다. 미국 재무부의 대답은 ‘제재 대상’이라고 나왔지만 고심의 흔적이 보인다. 미국 당국의 제재 리스트에 올라있는 제재 대상은 러시아대외경제은행(VEB)이다. RDIF는 이 은행의 자회사다. 러시아 당국은 VEB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지우기 위해 RDIF를 2016년 여름 VEB에서 분리해 국유재산관리공사(Rosim)에 편입했다. Rosim은 제재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운영만 분리했지 자산은 여전히 VEB에 소속돼 있다.
RDIF가 ‘버진 하이퍼 루프 원’에 투자 한 지는 2 년이 조금 지났다. 2016년 4월, 2017년 10월에 투자를 진행했다. 2017년 10월의 투자는 중국 국부펀드의 하나인 중국투자공사(Chinese Investment Corporation)와 함께 진행했다. 모두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등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이 대러 제재를 발동한 후다. 당연히 ‘버진 하이퍼 루프 원’은 RDIF의 투자를 받기에 앞서 미국 당국에 문의했고 당국도 이를 심사했지만 큰 문제가 없다고 승인했다. 관련 법안을 따져보더라도 RDIF의 하이퍼 루프에 대한 투자는 적법하다.
하지만 미국 당국자들은 RDIF가 관여한 거래를 앞으로 좀 더 엄격하게 다룰 것임을 예고한다. 투자를 허용할 당시는 미-러 관계가 악화하고는 있지만 관리가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현재는 더 악화됐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미국의 새로운 국방수권법은 러시아에 대한 더 강한 제재 이행과 모니터링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국 상원의 밥 메넨데스의원과 린지 그레이험의원이 제안한 새로운 제재 법안은 RDIF를 적극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 대한 미국 내 반감의 증가와 중국의 미국 첨단 기술 탈취를 응징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일조했다. 현재는 러시아의 RDIF가 문제지만 미-중 관계가 악화할 경우 중국 및 다른 국가들의 미 첨단 기술에 대한 투자도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미국 제재 당국과 일부 정치인들이 RDIF가 투자한 하이퍼 루프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하이퍼 루프에 의해 개발된 기술이 러시아와 중국의 글로벌 전략과 밀착에 기여할 가능성 때문이다. 이들은 하이퍼 루프 기술이 중국의 ‘일대일로’ 건설을 촉진하고 경제성을 높일 가능성과 러시아의 물류 역동성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을 우려한다. 때문에 RDIF의 투자가 합법적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이 투자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첨단 및 민감 기술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항상 국가 안보와 연관된 논쟁을 불러왔다. 장기적으로 볼 때 기술의 개발과 상용화, 시장 개척의 이점을 위해서는 글로벌 투자와 협력이 당연하다. 문제는 이를 국가안보 및 경쟁의 이슈와 어떻게 슬기롭게 조화시키느냐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의 해법은 결국 투자 허용 및 제재 판단의 주체가 보유하고 있는 전문성의 수준과 그 국가가 보유하는 지속적인 혁신 능력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