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뒤흔든 사우디 언론인 피살...'자본력에 제재 어려워'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10.21 15:35

터키 언론 "손가락 잘리는 고문 당하다 참수" 보도
사우디 왕세자 MBS 개입 의혹...국제여론 등 돌려
리야드 국제투자회의에 미국도 '불참'
사우디 자본력에...투자 얽힌 각국 기업 '거래청산' 못해


▲사우디 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진=AFP/연합)



지난 2일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을 찾았다가 실종된 사우디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죽음이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키의 친정부 신문 예니 샤파크는 지난 17일(현지시간) 터키 당국자의 발언을 담은 녹음 파일을 입수했다면서, 카슈끄지가 사우디 총영사관 안에서 사우디 군 및 정보요원들에게 붙잡혀 손가락이 잘리는 고문을 당하다가 참수됐고, 시신도 훼손 당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미국 워싱턴 포스트도 카슈끄지가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국제사회가 카슈끄지 살해에 무함마드 빈살만(MBS) 사우디 왕세자가 개입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면서 사건 초기부터 사우디 왕실과 MBS의 개입 의혹을 제기해온 국제사회는 일제히 MBS에게서 등을 돌렸다. MBS가 사우디의 경제 개혁을 내세우고 전세계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야심차게 계획한, 오는 23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리는 ‘미래투자 이니셔티브’ 국제투자회의에 영국, 프랑스에 이어 미국까지 주요국들이 줄줄이 불참을 선언하며 보이콧에 나선 것이다. 


◇ 후폭풍에 놀란 사우디..."카슈끄지 사망 MBS와 관련 없어" 

▲(사진=AP/연합)


국제사회 압박과 비난에다 막대한 경제적 손실 위험 등 엄청난 후폭풍에 놀란 사우디 정부는 뒤늦게 사태 진화에 나섰다. 사우디 정부는 20일(현지시간) 자국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과 관련, 배후로 지목되는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이번 사건과 전혀 관련 없다고 주장했다.

사우디는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살해 용의자들과 말다툼을 하다 몸싸움으로 번졌고, 이 과정에서 사망했다는 초기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카슈끄지의 죽음이 세간의 의혹처럼 기획된 게 아니라 우발적인 과실치사였다는 것이다.

사건 발생 초기 사우디 정부의 공식 입장은 카슈끄지가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나간 뒤 실종됐다는 것이었다.

살만 빈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은 이번 사건과 관련, 무함마드 왕세자의 고문인 사우드 알카흐타니와 정보기관 부국장인 아흐메드 알아시리 장군 등 고위 인사 5명을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했다.동시에 국왕 직속 정보총국(GIP)의 구성과 규정, 권한 범위와 책임 등을 총체적으로 재정비하기 위한 장관급 위원회를 무함마드 왕세자가 조직하도록 명령했다.

사우디 검찰도 이번 사건과 관련, 20일 사우디 국적의 용의자 18명을 구속해 계속 조사하고 있다면서 "관련 기관이 진상을 국민에게 명명백백하게 알리고 관련자는 엄중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발표해 사건의 ‘성격’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 사우디 자본력 무시 못해...제재, ‘현실성 없어’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 (사진=AFP/연합)


카슈끄지 피살사건을 둘러싸고 사태 파장을 최대한 줄이려 하는 사우디 정부와 여전한 의혹과 비판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국제사회의 입장이 상충하는 가운데, 사우디에 대한 각국의 기업들이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제제 조치까지 실행할지는 미지수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우디의 인간 존엄성 훼손을 지적하며 겉으로 거리를 두는 상징적 행보가 속출하겠으나 기업 활동이 사우디 자본에 너무 많이 얽힌 까닭에 비판을 넘어서는 실질적 조치가 나오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1일 "최고경영자들이 리야드 행사를 기피할지는 몰라도 사우디의 돈을 기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이 같은 시각을 소개했다.

서방기업들은 카슈끄지의 살해된 사실이 확인되기 전부터 이미 사우디를 배척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미국과 유럽 경영인들은 카슈끄지 살해의 몸통으로 의심을 받는 모하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글로벌 투자유치를 위해 다음 주 사우디 리야드에서 개최하는 ‘사막의 다보스’ 투자회의에 불참하겠다고 앞다퉈 선언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사우디와 향후 거래 관계를 청산하는 등의 결단을 내리기에는 사우디에서 받은 투자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기업들이 사우디와의 관계에서 정확히 얼마나 많은 이익을 보고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기간시설, 국방, 화학, 석유, 기술, 예능 등에 쏟아지는 사우디의 지출을 고려할 때 사우디가 무시할 고객은 절대 아니다.

미국 의회 조사국에 따르면 사우디는 해외군사판매 규정에 따라 지난 10년 동안 1천389억 달러(약 157조3천원)에 달하는 무기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레이시언, 보잉, 록히드마틴 등 미국 방산업체들은 사우디가 앞으로 몇 년 동안 1천100억 달러(약 124조5천700억원)에 달하는 무기를 사들이겠다고 선언하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사우디의 무기 구매력에 미국만 포섭된 것은 아니다. 영국의 유력 방위산업체인 BAE 시스템스도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 48대를 50억 파운드(약 7조3천800억원)에 사우디로 수출할 예정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유럽 방산업체들은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사우디로부터 570억 유로(약 74조94억원)에 달하는 무기를 수출했다.

방산업체만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과 유럽 투자은행은 상업거래에 대한 조언 명목으로 수십억 달러의 수수료를 받아 챙기고 있다. 사우디는 미국 월스트리트에 있는 블랙스톤 그룹이 굴리는 새로운 투자펀드에 200억 달러(약 22조6천500억원)를 쏟아부을 예정이다. 스티븐 슈와츠먼 블랙스톤 회장은 ‘사막의 다보스’에 가지 않기로 했으나 사우디와 결별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의 석유기업 토탈은 사우디와 최근 90억 유로(약 11조6천800억원)에 이르는 석유화학 계약을 체결했다. 사우디는 작년에 포드 자동차와 보잉 항공기를 포함해 미국 제품을 200억 달러(약 22조6천500억원)어치나 사들였다. 제너럴일렉스틱(GE)과는 발전, 광산채굴, 보건 등과 관련한 분야에서 150억 달러(약 16조9천900억원) 규모의 재화·서비스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사우디가 석유 의존도를 줄여 경제체계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돕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에 450억 달러(약 50조9천600억원) 투자를 약속했다. NYT는 기업들이 카슈끄지 사건이 지닌 의미를 평가하고 있으나 쉽게 경영적 결단을 내릴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사우디에 대한 제재가 미약하거나 국제사회의 정책이 관계를 축소하는 쪽으로 크게 뒤틀지 않는다면 기업들도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을 지낸 브루스 오리덜 브루킹스연구소 사우디 전문가는 "사우디는 아직 엄청난 부와 강력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오리덜 연구원은 "사우디는 계속 중대한 경제 주체로 활동할 것이고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런 상황이 계속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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