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정부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한 서민·영세자영업자 등의 유류비 부담 완화 및 구매력 제고를 위해 6일부터 내년 5월 6일까지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15% 인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휘발유는 리터당 최대 123원, 경유는 87원, LPG는 28원 인하효과가 기대된다. 다만 유류세 인하로 저소득층 보다 고소득층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린다는 논란이 있어 고급휘발유는 제외됐다. 유류세 인하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이후 10년 만이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에 대비하여 지난달 24일 정유사와 대리점, 주유소 등 석유유통 주체들과 간담회를 가진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석유협회와 석유유통협회, 주유소협회, 알뜰주유소협회 등은 정부의 유류세 인하정책을 적극 환영하며, 그에 따른 효과를 소비자가 최대한 빨리 체감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사실, 유류세 인하정책은 고유가 때마다 석유유통업계가 정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해 온 정책이다. 국내 휘발유에는 6가지의 세금이 붙는다. 교통에너지환경세 529원, 교육세 79.35원(교통세의 15%), 주행세 137.54원(교통세의 26%) 등 총 745.84원의 세금이 붙고 여기에 관세(수입액의 3%)와 수입부과금(리터당 16원), 부가가치세 등이 추가된다. 이러한 기준으로 지난 달 셋째 주(10월 8∼14일) 휘발유 소비자가격 1674.93원을 보면, 유류세는 모두 933.48원으로 기름 값의 55.73%를 차지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기름 값이 오르면 주유소는 기름구매를 위한 금융비용이 늘어나고 카드수수료 또한 올라가는 반면, 소비는 줄어들어 이래저래 경영상의 이중고를 겪게 되어 있다. 기름 값이 내려가면 상황이 반대로 전환되어 주유소는 경영에 상당한 부담을 덜 수 있다.
정유사들은 6일부터 유류세 인하 분을 즉각 반영해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석유유통협회와 주유소협회 등 석유유통 단계들도 회원사 계도와 협조요청을 통해 공급가격 하락분이 주유소 가격에 최대한 신속히 반영되도록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
휘발유와 경유 등 국내 석유제품의 유통경로는 정유사-대리점-주유소, 또는 정유사-주유소 등 2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각 석유유통 주체들이 최대한 신속히 반영되도록 기간을 단축한다 해도 유류세 인하 전에 공급받은 재고물량 때문에 즉시 현장 판매가격을 내리기 어려워 소비자 체감까지는 길게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시간이 다소 지체되더라도 유류세 인하가 실질적인 가격 하락으로 고스란히 이어지느냐이다. 가장 큰 변수는 국제유가가 계속 상승하여 유류세 인하효과를 상쇄하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하락 폭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2008년에는 유류세 10%를 인하했으나 유가가 급등하면서 체감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 많았다.
물론 미국의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가 본격화돼 유가 상승의 요인은 있다고 하지만 그때처럼 단기 급등할 가능성이 적은데다 사실상 정부 직영이랄 수 있는 알뜰주유소들이 전국에 산재하고 있어 인하효과가 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문제는 소비자와 마주하는 주유소 단계에서 어느 정도의 가격인하가 반영될지 미지수다. 현재 국내 주유소시장은 100% 완전경쟁 상태로 BP나 엑손모빌 등 다국적 메이저가 들어올 수 없는 치열한 시장이다. 그러면서도 땅값, 유류구매 능력, 세차장 유무에 따라 판매가격이 다르고 지역별로도 편차가 매우 심한 상황이다.
또한, 알뜰주유소가 가격을 리드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지방이나 도심외곽에 주로 위치해 있어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은 수도권이나 도심상권에서는 별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우리 협회가 집계한 지난 6월 현재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에서의 알뜰주유소 분포율은 15%, 수도권 외의 지역에서는 85%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수도권의 휘발유 판매량은 44.5%, 수도권 외 지역에서의 휘발유 판매량은 55.5%였다. 따라서 수도권에서 정유사 직영주유소들과 일반 주유소들의 선도적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번 유류세 인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휘발유의 탄력세율을 529원에서 450원으로, 경유의 탄력세율을 375원에서 319원으로 낮추는 것이다. 결국, 2조 원 가량의 국민 세금을 덜어서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임으로 고스란히 그 효과가 전달될 수 있도록 석유유통 주체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또한 정부도 필요시마다 시행령을 개정하여 한시적, 생색내기용으로 탄력세율을 조정할 것이 아니라 일본처럼 유가가 일정한 선을 넘으면 자동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