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컬럼] 지하철 시(詩) 예찬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11.14 10:27

▲배병만 산업부장(국장)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내는 삶이 건조하고 무의미하며 불행하다. 오랜 직장생활을 한 피로감 때문일까. 예전 한 때 이런 고민에 빠져 몸과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다.

평소처럼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기다렸다. 내 눈에 문뜩 들어온 시 한편.

‘눈이랑 손이랑 깨끗이 씻고 자알 찾아보면 있을 거야. 깜짝 놀랄 만큼 신바람 나는 일이 어딘가 어딘가에 꼭 있을 거야. 아이들이 보물찾기 놀이 할 때 보물을 감춰두는 바위 틈새 같은 데에 나무구멍 같은 데에 행복은 아기자기 숨겨져 있을 거야.(허영자의 ’행복‘)

순간 머릿속에 신선하고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그래 내 자신이 매너리즘에 빠져 어디인가에 나를 기다리고 찾아지길 바라는 ‘행복의 보물’들이 여기저기 있는데 내가 그것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 자신의 부족함으로 그토록 기다리는 행복들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일깨워 준 시는 바로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써 있는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 시’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일정한 간격으로 써 있는 시는 서울시가 지난 2008년 ‘시가 흐르는 서울’ 사업의 일환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서울의 전철역 63개역 990개의 시가 선보였고 처음에는 심사위원이 선정한 유명 시인들의 작품 위주로 전시됐다. 나름 호응이 전해졌는지 서울시는 지난 2011년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공모를 해 지금은 299개역 4500여개의 많은 작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또 2~3년 주기로 작품을 교체한다고 한다.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이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은 어둡다’. (정진규의 ‘별’) 그래 어느 누구든 지금의 어둡고 캄캄한 상황 속에서 역설적으로 한결 밝은 희망의 별빛을 볼 수 있다. 지위와 돈과 권력이 쥐어진 휘황찬란한 환경에서는 오히려 찬란한 별을 보고 찾을 수 없다.

필자는 예전에는 시를 잘 몰랐다. 아무리 읽어도 감흥이 도대체 나오지 않으니 중·고교시절 시험을 위해 그냥 외웠다. 시의 함축적인 감동을 모르니 당연 오랫동안 시를 접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 자신의 삶과 생각이 켜켜이 두터워지고 묵어지면서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난 시 한편. 나의 잠재적인 감성과 감흥을 한순간 터트렸다. 언어의 울림, 운율, 조화 등을 통해 인간의 감정이나 상상력을 자극하고 표현하는 문학 작품이 시라는 정의도 이해가 되는 거 같다. 필자로서는 ‘지하철 시’를 통해 시의 매력을 발견했고 삶을 반추해보며 자극을 받은 행복이자 보람으로 다가온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와이프와 작은 말다툼이 있었다. 아침에는 반드시 밥을 먹어야 하는 가부장적 전형의 남편인 필자. 내내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느 전철역인지 모르지만 눈에 들어온 시 한편. ‘출장지에서 앞당겨 집에 왔더니 아내 혼자 밥을 먹고 있다. 놀라 얼른 감춘 밥상 위 맨밥에 달랑 김치 몇 조각. 어머 예고도 없이 벌써 왔어요. 당신이 없으면 반찬걱정을 안 해 대충 먹어요. 김치 국물이 해일처럼 와락 내 허파로 쏟아지는 저녁’(김지태의 ‘아내의 밥상’) 여보 이 자리를 빌어 말합니다. "미안하고 싸랑해요."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이란 없으니. 온 하늘이 새의 길이 듯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니. 모든 새로운 길이란 잘못 들어선 발길에서 찾아졌으니. 때로 잘못 들어선 어둠 속에서 끝내 자신의 빛나는 길 하나 캄캄한 어둠만큼 밝아오는 것이니’ (박노해의 ‘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 지금 내가 선택하고 걷고 있는 삶은 나름 가치와 행복이 있을 수 있으니 자신감과 보람을 갖고 좌절하지 말고 꿋꿋이 살자는 메시지로 스며든다.

‘당신은 별입니다. 나한테 당신은 별입니다. 별이 보이지 않는 밤에도 언제나 당신은 별입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에도 흰눈이 내리는 밤에도. 달빛이 밝아 별빛이 없어도 태양빛 눈부신 한낮에도. 당신은 언제나 나에게 별빛입니다.’(반종원의 ‘고백’) 우리 모두 행복을 기원하는 세상, 희망을 주는 서로의 크고 작은 별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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