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다가오는 새해, '함정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12.13 16:42

박영철(한국공인회계사회 사회공헌·홍보팀장)


경제는 심리다. 그런데 최근 우리 경제를 둘러싼 크고 작은 우려가 있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함정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정부의 재정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재정과잉 함정’에 빠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시선이 대표적이다. 그만큼 국내 경제가 처한 현실이 녹록치 않을 뿐 아니라,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함정. 흔히 ‘구덩이(trap)’라고 한다. 경제분야에 적용하면, 빠져 나올 수 없는 곤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해서인지 ‘유동성함정’(Liquidity trap)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현재 기준금리가 미국보다도 높은 우리 경제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해도 기업의 투자와 소비심리가 얼어붙고 있어 짚어볼 필요는 있다. 유동성 함정은 명목 단기이자율이 0 또는 0에 가까운 상태를 말한다. ‘통화정책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상태’로도 규정한다. 경제주체들이 돈을 움켜쥐고 시장에 내놓지 않아 시장에 현금이 흘러 넘쳐 구하기 쉬운데도 기업의 생산, 투자와 가계의 소비가 늘지 않게 된다. 결국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마치 경제가 함정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미 경제학자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을 직접 겪으며 붙인 이름이다.

문제는 이렇다. 유동성 함정에 빠지거나 가까워지면 정부의 전통적인 통화정책은 유효하지 않아, 새로운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케인즈학파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유동성 함정에 대응하는 바른 정책이다"라고 진단한다. 위축된 수요를 다시 살리는 것이 정부 재정지출의 확대라고 본 것이다.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진한 뉴딜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일본도 2005년 GDP의 20%에 해당되는 100조 엔을 10여년에 걸쳐 공공사업으로 지출한 바 있다.

반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으로 대표되는 통화론자들은 유동 성함정의 해결책으로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제시한다. "‘현금 선물(money gift)’이라는 이름으로 중앙은행이 본원통화의 공급량을 대폭 증가시켜 경제에 유동성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중앙은행(FED)은 2008년 금융위기 때 경기부양을 위해 시중채권매입으로 양적완화를 개시했다. FED는 2008년 말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연 0~0.25%)으로 낮춘 후 더 이상의 경기부양 수단이 없자 사상 초유의 양적 완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장기 금리 인하로 투자와 소비를 활성화하고 얼어붙은 주택경기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모든 국가는 경제성장, 완전고용, 물가안정, 국제수지 균형을 추구한다. 이처럼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를 위해 정책의 두 축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다. 경기에 대한 엄중하고 치우침 없는 상황인식이 바탕이 되고, 통계착시나 통계오독 없이 정확한 통계가 산출되어야 맞춤형 경제정책이 수립된다. 그래야 정부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선택지를 잘 고르게 되고, 제 때에 집행함으로써 정책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의 투자심리가 살아나 양질의 일자리도 늘고, 민간부문의 소득과 소비지출도 진작되어 국가 성장률도 올라가는 등 선순환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가오는 새해에 여러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사회적 공감대 없이 무상복지가 늘어나면 복지국가 함정에 빠질 수 있고, 일자리 늘리기가 단기 실적에 매몰되면 재정과잉지출 유혹에 빠지게 된다. 더 커지 면‘타키투스 함정(Tacitus Trap)’이라는 신뢰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고대 로마의 역사학자인 타키투스 는"황제가 한번 사람들의 원한의 대상이 되면 좋은 일과 나쁜 일 모두 시민들의 증오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나 조직이 공신력을 잃으면 진실을 말하든 거짓을 말하든, 선정을 하든 폭정을 하든 시민들은 모두 거짓과 폭정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늑대와 양치기’의 우화가 떠오르는 이유다.

곧 2019년 황금돼지해를 맞는다. 함정의 유혹을 벗어나야 정책이 신뢰받고, 경제주체들에게 밝은 희망을 줄 수 있다. 따스한 봄바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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