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100년, 미래 100년] 미래에너지 정책, 어디로 가야 하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1.07 07:46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에너지는 끊임없이 흘러왔다. 발전했다.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특정 에너지원이 한 시대를 이끌었다. 각광을 받았다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21세기 들어 전 세계는 이산화탄소 배출과 전쟁을 선포했다. 안전한 에너지원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탈화석, 탈원전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기에 전 지구촌적으로 ‘기후변화’라는 위기 앞에 인류는 서 있다. 그동안 사용한 에너지원에 대한 원론적 재검토에 나서는 시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는 그동안 어떻게 발전했고 앞으로 어떤 변화에 휩싸일 것인가. 에너지경제신문은 연중기획시리즈로 ‘에너지 100년, 미래 100년’을 연재한다. 이번 기획시리즈를 통해 에너지원에 대한 깊은 고민과 나아갈 방향성을 고민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2019년 기해년의 희망찬 새해를 기원하듯 동해가스전이 햇빛을 받으며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2019년이 밝았다. 세계 아젠다는 ‘공존’과 ‘지속가능성’이다. 20세기 말부터 인류 역사에 남을 만한 대형 에너지·환경 관련 사고들이 발생하면서 전 세계 에너지정책도 대대적 변화를 맞고 있다. 기후변화, 자원 고갈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세계에너지시장은 ‘재생에너지’에 집중하고 있다. 기존 화석연료와 달리 자원이 무한하고 온실가스를 내놓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화석연료는 도시 성장, 경제 발전에 큰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그만큼 대기 오염, 산성비 등 많은 문제를 낳았다. 특히 2010년대 들어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될 만한 대형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2010년 영국 석유기업 브리티시페트롤륨(BP)의 석유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Deep Water Horizon)’은 미국 멕시코만 연안에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나타나자 실제 매장을 확인하기 위해 해저에서 시추탐사 작업을 하다가 폭발 사고를 냈다. 11명이 사망했다. 한반도보다 더 넓은 해역이 기름에 오염됐다. 이 사고는 수년 동안 인근 해양생태계 오염을 유발하는 요인이 됐다. 미국 공공 과학저널 플로스원(PLOS One) 연구 논문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멕시코만 인근 해역에서 발견된 돌고래 사체 46구를 조사한 결과 폐와 호르몬을 분비하는 부신이 손상됐는데 이는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건과 연관이 있다고 발표됐다.

▲2010년 4월 미국 멕시코만에서 발생한 석유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의 폭발 사고 현장.



▲멕시코만에서 발견된 병코 돌고래 사체.


원자력 발전도 마찬가지다. 인류에게 ‘제3의 불’이라고 하는 원자핵에너지. 이른바 원자력은 지구상에 자연상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발명한 새로운 에너지였다. 원자력은 인류에 빛과 그림자를 함께 남기고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물론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핵폭탄) 투하와 체르노빌과 같은 인류사적 재앙이 발생했다. 반면 전기생산이나 방사선치료, 가속기, 비파괴 검사 등 의학·산업에서 유용한 ‘두 얼굴’을 갖고 있다. 다만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상업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원전사고를 통해 인류는 ‘원전 안전 신화의 붕괴’를 목도했다.

2011년 3월 11일, 규모 9.0의 강진이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다. 거대한 쓰나미는 집도, 자동차도, 비행기까지 모두 휩쓸고 지나갔다. 1만5893명이 숨지고 2553명이 실종됐다. 수년이 지났음에도 원전사고로 인한 주민의 정신적 충격은 여전히 심각하다. 피난 지시가 해제된 지역의 주민들은 방사능 공포를 이유로 7.9%만 복귀했을 뿐이다. 버려진 집과 마을은 방사능에 피폭된 멧돼지들이 점령했다. 세계적인 환경운동단체인 그린피스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유증으로 100만명이 사망하고 700조원 이상의 수습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폭발 사고를 일으킨 후쿠시마 원전.


일련의 사건들의 계기로 세계적으로 에너지, 환경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높아졌다. 이제는 매년 여름 폭염과 겨울의 한파 등 이상기온, 지구온난화와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도 현실로 다가온 실정이다.

2013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없을 때 지구의 연평균 기온은 2081~2100년에 지금보다 2.6~4.8℃ 더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또 관련 전문가들은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2℃ 이상 상승할 경우 자연 서식지와 생물종 감소, 빙하 감소, 해수면 상승, 식량생산 차질 등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날 거라 경고하고 있다. 이에 세계 주요국들은 2015년 ‘파리기후변화 협정’을 맺고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줄이기로 약속했다.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스스로 정해 국제사회에 약속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올해도 세계 탄소 배출의 87%에 달하는 200여 국가가 ‘친환경 에너지정책’을 통해 협정을 이행 중이다. 유럽에서는 에너지 전환 정책, 중국은 석탄의존도 감축 등을 추진 중이며 이에 따라 재생에너지의 역할도 확대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해 온난화로 인한 지구 기온상승을 1.5도로 묶을 방안을 담은 특별보고서 ‘지구온난화 1.5℃’를 채택했다. 이 보고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최소 45% 감축하고 2050년까지 제로(net-zero)배출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2050년까지 1차 에너지 공급의 50~65%, 전력 생산의 70~85%를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공급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 채택을 계기로 우리의 기후정책에 대한 변화 요구와 함께 에너지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별보고서는 그 자체로 중요할 뿐 아니라 최근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수정·보완하고 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 정부와 사회에도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전의찬 세종대 환경에너지공간융합학과 교수는 "산업화 이후 지구의 온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지금부터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문제를 해결할 문이 닫힐 수 있다"며 "기후변화에 따른 위험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9·11테러는 책임자가 명확한데 기후변화는 책임자가 명확하지 않아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또 "결국 기후문제에 대한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만큼 해결에도 모든 국가가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선 우선 에너지소비를 줄이고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려야 한다"며 "단 나라별로 경제발전 속도의 차이가 있고, 각국의 상황에 따라 에너지원 보유 차이, 산업구조 등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기후변화 대응, 미래에너지로의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결국 시민사회의 역할"이라며 "정부와 기업의 의지와 준비만으론 한계가 있다. 시민들이 환경, 에너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할 일이 많다.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겠는데 여전히 우리 국민은 에너지는 누군가 공급하는 것이고 개인은 소비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에너지전환은 결국 시민사회의 동력을 바탕으로 정치권, 기업의 변화와 참여로 성공하는 것인데, 아직 그 힘이 모아지는 속도가 더디고 불분명하다"고 분석했다.

국가 최상위 에너지행정계획인 ‘3차 에너지기본계획’ 워킹그룹 총괄위원장을 맡은 김진우 연세대 글로벌융합기술원 특임교수는 "에너지 부분의 미래는 원전·석탄 의존의 전력믹스에서 재생에너지로의 확대가 될 것"이라며 "에너지믹스는 원별 분리된 공급망에서 에너지원간 공급 최적화를 이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에너지전환을 위한 중점 추진사항으로 수요관리의 획기적인 강화와 에너지 신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적 기술적 기반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전문가 기고] 에너지 전환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이헌석_LEE_HEONSEOK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도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려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3020’ 즉,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올린다는 비전과 목표를 제시했다. 또한 탈(脫)원전 등 지속가능한 에너지전환의 패러다임 확립을 국가 에너지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전환 정책기조에서 수급안정과 경제성을 중시하던 정책이 안전성과 친환경성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또 발전원 구성에서는 원자력, 석탄발전에서 신재생 천연에너지 중심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기념사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 확고한 사회적 합의로 자리 잡았다"고 하면서 "국민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청정 에너지시대, 저는 이것이 우리 에너지 정책이 추구할 목표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바람과는 달리 원전발전 감축 등 에너지 전환정책에 따른 사회적 갈등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더불어 이해관계자의 설득과 수용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정책들은 결국 제2, 제3의 밀양송전탑 건설 반대시위로 이어질게 뻔해 보인다.

따라서 에너지전환에는 지금 방향을 설정하더라도 그 실현까지는 수십 년이 걸리게 돼 있다. 바꾸어 말하면 오랜 세월을 두고 확고한 원칙아래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부터 찾아내 시정하지 않고서는 자칫 원점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에너지정책은 밀실에서 결정됐다. 소수의 관료와 전문가가 정책을 결정·집행 해왔고, 이 때문에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 이런 면에서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정보 제공과 사회적 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국민투표와 주민투표 같은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도 도입해야 한다.

특히 현재 한국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또한 감축 수단과 경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미흡하다. 한국의 기후변화 정책은 과학적 토대와 민주적 의사결정 기반이 매우 취약한 반면 산업계의 이해관계에 민감하고 주로 시장과 기술 중심의 정책 수단에 의존하는 한계를 보인다. 이를 극복하려면 제대로 된 정보 제공과 법·제도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시민들의 의식개선도 중요하다. 노동은 먹고 사는 문제이지만, 환경은 죽고 사는 문제란 말이 있다. 달리 말하면 경제는 먹고 사는 문제요, 환경은 생사가 달린 문제다.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는 얘기라 요즘 많이 인용한다. 국민 의식조사를 해보면 기후변화 문제를 포함해 환경문제에 대한 우려와 관심은 결코 적지 않다. 우리 국민 수준이 그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환경문제나 기후변화 문제의 특성은 당장 나의 이해관계와 이 문제가 직결돼 있다고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은 밀접히 연결돼 있다. 하루하루 생활을 영위하는 분들 입장에선, 이게 과연 내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문제인가 끊임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있다. 그럴 때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충분히 누구나 그런 조건에 있는 건 이해하지만 한발짝만 더 나아가 생각할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거다. 환경을 지킨다는 게 단순히 누군가를 위해, 지구 전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란 걸 증명하는 사례는 많다. 나와 내 가족의 건강에 무엇이 도움이 될까 생각하면서 그 방향으로 실천하면, 그게 지구를 구하는 길이다. 환경문제를 거창하거나 불편하거나 내가 큰 부담을 지는 문제로 생각하기보다 상식에 기반해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한 작은 실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치 공세와 가짜정보 홍수로 제대로 된 진전이 불가능하다. 지난 2년 동안 탈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으로 에너지정책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2019년엔 미래지향적인 에너지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나가는 원년이 되길 기대한다.

전지성 기자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