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사진=AP/연합)


석유수출국기구(OPEC)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대규모 감산을 통해 국제유가를 80달러선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경제구조 개혁을 위한 신규투자에 이어 복지관련 예산 마련에 나서는 사우디 정부의 움직이란 분석이다. 올해 들어 미중 무역전쟁 완화 기대감, OPEC의 원유 감산, 미국증시 상승 등으로 인해 유가가 계속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의 본격적인 감산계획이 향후 유가의 향배를 어떻게 가를지 주목된다.


◇ 미중 무역협상·OPEC 원유 감산·美증시 상승…국제유가, 7거래일째 오름세

국제유가는 50달러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일대비 배럴당 1.26달러(2.6%) 오른 49.7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3월물 브렌트유는 전일대비 1.39달러(2.4%) 오른 배럴당 58.72달러로 마감했다.

한때 40달러 선을 위협받았던 WTI는 지난 12월 28일부터 7거래일째 상승세를 나타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WTI와 브렌트유는 각각 11.6%, 11.4%씩 상승했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협상에서 입장차를 좁히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가 나오면서 위험자산인 원유의 투자심리가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이 원유 트레이더 사이에 웃돌고 있는 상황에 미중 무역분장이 완화되면 유가상승에 대한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8일 "미국과 중국이 입장차를 좁히고 있다"고 보도했다. 양측 대표단은 당초 7~8일 이틀 일정으로 진행하려던 협상을 9일까지 연장했다. 미국 협상 대표단인 스티븐 윈버그 에너지부 차관보는 협상지인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재까지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산유국들이 석유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는 소식도 유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S&P글로벌플랫츠에 따르면 12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일평균 석유 생산량은 전월 대비 63만 배럴 감소한 3243만 배럴로 조사됐다. 이는 최근 6개월래 가장 적은 산유량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생산량을 하루 40만 배럴 넘게 감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주 열린 전미경제학회에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올해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갈 것이라며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연준의 완화된 어조는 지난 주말 뉴욕증시에서 주요 3대 지수의 급등세를 일으켰고 이로 인해 유가 랠리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원유시장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긴장 완화는 원유 수요에도 긍정적인 요인이 되는 만큼 이에 기반한 유가 상승 흐름이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미즈호의 밥 야거 이사는 "무역 관련 환경은 강세 요인"이라면서 "무역 협상이 타결된다면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PVM 오일 어소시에이츠의 타마스 바르가 연구원은 "물론 무역 관련상황이 언제든 급변해서 3월 이후 추가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낙관론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투자노트를 통해 "원유시장이 지나치게 비관적인 성장 전망을 반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성장률이 2.5% 밑으로 둔화하지 않는 한 유가가 더 회복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유가 반등을 위해서는 원유 수요가 강하다는 증거가 최우선이지만 OPEC이 지난달 합의한 감산계획을 실제 이행하는지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 사우디의 추가 감산 계획, "유가 80달러까지 끌어올려야"

2018-2019 사우디 원유 생산량 및 수출량 추이(11월과 12월은 추정치, 2019년 1월은 계획치 자료=WSJ)



실제 원유시장은 18개월 최저치로 떨어졌던 지난 12월에 비해 공급량이 많이 타이트해진 상황이다. 지난 12월 OPEC은 원유 생산량을 전월대비 63만배럴 감축한 가운데 사우디는 이중 40만배럴을 감산했다. 그러나 사우디가 1월에 추가적으로 감산할 계획을 밝히면서 유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트레이더 사이에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WSJ에 따르면 사우디는 이달 말까지 원유 수출규모를 하루 평균 710만배럴 수준으로 줄일 계획이다. 작년 11월 기준으로 보면 하루 평균 80만 배럴까지 줄이는 수준이며 이는 지난달 초 감산합의에서 나온 계획보다 더 큰 규모다. 당초 OPEC+(OPEC과 러시아 등을 포함한 비(非)OPEC 산유국)는 유가 안정화를 목적으로 올해 상반기에 하루 평균 120만배럴을 감산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특히 120만배럴 중 사우디를 포함한 OPEC 회원국에 할당된 감산 폭은 80만배럴로, 당시 사우디는 하루 평균 25만배럴 정도 줄이는 것으로 합의했다. 현시점에 발표한 감산 폭 중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사우디가 유가 올리기에 나서는 이유는 자국 내 경제성장을 위해 올해 정부 지출을 작년보다 7%가량 늘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18일 사우디 재무부는 2019년 예산안 내 정부지출 규모를 1조1060억리얄(약 331조7000억원)로 전년 대비 7% 확대했다고 밝혔다. 당시 유가는 10월 이후 두 달 사이 40% 가까이 폭락했지만 사우디는 재정 지출 규모를 오히려 늘린 것이다.

WSJ에 따르면 사우디가 올해 예산을 안정적으로 지탱하기 위해 유가가 95달러까지 올라가야 하지만 사우디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금융 자산을 감안해 80∼85달러선이 만족할 만한 유가 수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부 지출이 늘어난 이유는 원유수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국 내 수익구조를 다각화시키고 해외자본유치를 위한 신규투자에 따른다. 사우디는 과거 2016년 탈(脫) 석유 개혁을 골자로 하는 ‘국가 개혁 프로그램’(NTP)을 승인한 바 있다. NTP에는 비석유 부문 수입을 늘리고 정부 보조금을 축소하는 등 사우디 왕가가 저유가 시대를 헤쳐나갈 장기적인 경제 개혁안이 담겨있다. 사우디는 또한 앞으로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여행 산업을 새로 만들어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을 도모시킬 계획이다. 현재 사우디 실업률은 13%로 알려졌다.

각종 복지 혜택이 늘어난 점도 올해 정부 지출을 증가시켰다. 사우디 왕실은 작년 1월부터 지급 중인 시민 생계수당은 물론 왕족수당, 공무원이나 군인에게 지급되는 연금 수당, 사회보장연금수당 등을 폐지하지 않기로 했다. 또 올해부터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수당을 10% 더 주기로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사우디가 재정 적자 수준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아래로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각종 수당을 폐지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사우디가 복지 혜택을 늘리는 이유는 왕실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크다. 특히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과 관련해 빈살만 왕세자에 비난이 몰리고 있는 것을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터키 검찰의 발표에 따르면 카슈끄지는 작년 10월2일 주이스탄불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됐다. 그러나 시신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사우디 정부도 살해 사실은 시인했으나 누가 지시했는지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의 대규모 감산을 통해 유가가 큰 폭으로 오를지에 대한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미국 CNBC에 따르면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브렌트유 가격을 당초 전망치인 배럴당 70달러에서 62.50달러로 내렸다. 골드만삭스 애널리시트는 "원유 재고 증가와 미·중 무역전쟁 여파 등에 따른 경기 둔화, 수요 증가 약화로 올해 원유 가격은 더 낮은 수준에서 균형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우디가 공급량을 조절하기 위해 원유 수출을 줄인다고 해도 이미 최대 산유국으로 올라선 미국이 셰일오일 증산으로 맞불을 놓으면 유가가 상승하기는 어렵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미국 원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1153만배럴로 같은 기간 사우디 산유량(1067만배럴)을 뛰어넘었다.

반면 OPEC 관계자는 유가 전망에 대해 "유가 상승을 위한 사우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단기적으로 80달러 수준으로 올라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원유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면 올 하반기부터 80달러대의 가격형성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의 닉커닝엄 연구원은 "WTI는 현재 배럴당 50달러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만약 사우디가 지난 감산회의에서 약속한 이상으로 감산에 나선다면 유가가 추가로 더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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