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중구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2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대한항공노동조합원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국민연금이 한진칼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 계획이 결정됐다. (사진=연합) |
국민연금이 최근 한진칼과 남양유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예고한 가운데 대기업 계열사를 중심으로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속속 늘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이들 중 대부분은 국민연금이 10% 안팎의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들이라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의결권 행사 강화)’ 등 주주행동주의를 의식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일각에선 작년 1월 섀도보팅(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도 참석 주주들의 찬반 비율대로 투표한 것으로 간주) 폐지에 따른 의결 정족수 미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11일 금융감독원 및 재계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SK하이닉스를 시작으로 같은 달 31일 SK네트웍스, 신세계 등이 전자투표제 도입을 잇달아 결정했다. 특히 신세계그룹은 신세계 본사를 포함해 이마트, 신세계푸드, 신세계 I&C,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총 7개 상장법인 이사회에서 동참을 결의했다.
주주 의결권 행사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는 게 각 사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들 기업들은 올해 첫 주주총회부터 총회장에 참석하지 않고도 온라인 전자투표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덕분에 주주들은 일일이 주총장을 찾지 않고도 목소리를 낼 수 있고, 특히 매년 주총 시즌 때마다 벌어지는 겹치기 주총 개최에 따른 의결권 미행사 걱정도 덜게 된다. 해당 기업들 입장에서도 가장 손쉽게 ‘주주친화적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얻는 효과를 낸다.
이런 까닭에 재계에서는 기업들의 잇단 전자투표제 도입 행렬을 국민연금, 자산운용업계, 사모펀드 등의 주주권 행사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 중 하나로 보는 시각이 크다.
실제 올 들어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국민연금의 지분율(작년 3분기 말 기준)이 상당하다.
SK하이닉스는 9.10%, SK네트웍스 6.17%, 신세계 13.49%, 신세계I&C 11.32%, 이마트 9.99%, 신세계푸드 8.59%, 신세계인터내셔날 7.08% 등 국민연금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신세계 그룹 계열사 중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또 다른 기업인 신세계건설과 광주신세계 또한 최근 주주 권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KB자산운용이 전체의 18.37%, 9.76%의 지분을 갖고 있어 이 같은 분석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이밖에 현재 전자투표 플랫폼 론칭과 함께 관련 제도 도입을 준비중인 미래에셋대우의 경우에도 국민연금 지분율이 9.99%로 확인된다.
사실 그간 재계에서는 전자투표제 도입을 꺼려왔다. 소액주주들의 결집에 부담을 느낀 탓이다.
공정거래위원회 발표만 봐도 작년 5월 기준 대기업 집단 가운데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기업은 전체 상장사의 25.7%에 불과하다. 이는 전체 평균(60.6%)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섀도보팅 제도가 폐지되면서 주총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사태를 미연에 막고, 여기에 또 최근 주주 행동주의 바람까지 일면서 자발적인 도입 분위기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
재계 한 관계자는 "주주행동주의 확산에 전자투표제 도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며 "그간 소액주주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던 주총 문화에 변화가 예상되지만, 반대로 개별 기업들은 경영진 중심의 주도적인 사업 추진 등에 난관을 만나거나 정치화 당할 우려도 함께 떠안게 됐다"고 말했다.
[에너지경제신문=류세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