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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무 금융증권 에디터

민병무 금융증권 에디터


무당파 최고수 리무바이는 이제 그만 칼을 내려 놓으려고 마음 먹는다. 라이벌을 꺾어야 하는 결투의 허무함을 깨달았다. 그는 애틋한 사이인 수련에게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청명검을 베이징의 황족 철패륵에게 맡겨 달라고 부탁한다. 400년 이어온 명검을 더 이상 잡지 않겠다는 결심은, 강호를 떠나겠다는 굳은 다짐이다. 그런데 수련이 철패륵의 집에 간 그날 밤, 청명검 도난 사건이 발생한다. 수련은 복면을 쓴 괴한을 붙잡으려다 옥대인의 집 근처에서 놓친다. 그는 낮에 만났던 옥대인의 딸 교룡을 범인으로 의심하는데...

리안 감독의 영화 ‘와호장룡(臥虎藏龍)’은 이렇게 시작된다. 지난 2000년 개봉했다. 무림의 세계와 굿바이 하려는 리무바이(주윤발 분),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자 동지인 수련(양자경 분), 끝없이 자유를 갈구하는 귀족의 딸 교룡(장쯔이 분), 그런 교룡을 사랑하는 마적 두목 호(장첸 분). 이 네 명의 주인공이 엄청난 액션을 보여준다. 그냥 치고 박는 주먹질과 칼질이 아니라, 그 속에 인생과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녹였다.

특히 두 장면이 마음을 사로 잡는다. 먼저 수련과 교룡이 조용한 달밤에 쫓고 쫓기는 신(scene)이다. 벽을 성큼성큼 타고 오르고, 지붕 위를 훨훨 날아 다니고, 물 위를 카펫 걷든 사뿐사뿐 뛰어다닌다. 만약 축지법을 쓴다면 저런 모습이리라.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심플한 북소리 또한 기막힌 감동이다. 단연 최고의 볼거리는 리무바이와 교룡의 대나무숲 결투다.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칼이 부딪히는 챙챙 소리는 오히려 소음이다. 바람에 댓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무게를 견디지 못해 대나무가 휘청휘청 굽어지는 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요즘말로 ‘ASMR 쾌감’이다. 대나무 위에서 두 주인공이 서로 칼을 휘두른다. 발레 콘테스트와 무용 경연보다 멋지다. 긴장감 대신 아름다움이 반짝인다.

요즘 리딩뱅크를 놓고 엎치락 뒤치락 하는 두 사나이의 싸움도 아름답다. 주인공은 1957년생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과 1955년생 윤종규 KB금융 회장이다. 달밤 추격전과 대나무숲 대결이 은행, 증권사, 카드사, 보험사 등을 중심으로 불꽃튄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연간 당기순이익 3조1567억원을 기록해 3조689억원의 KB금융을 누르고 1위 금융지주 자리를 되찾았다. 신한은 9년 연속 1등을 지키다 2017년 무섭게 치고 올라온 KB의 기세에 밀리는 수모를 겪었다. KB는 지난해 3분기까지만 해도 당기순이익에서 신한을 앞질렀지만, 막판에 특별보로금·희망퇴직금의 일회성 비용 급증 탓에 순위가 뒤집혔다.

톱을 탈환한 신한은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의 편입으로 이미 1위 수성 전략을 구축했다. 거기에 간편송금앱 토스로 유명한 비바리퍼블리카와 손잡고 인터넷은행 진출도 노리고 있다. KB 역시 물러서지 않겠다며 반격 카드를 준비했다. KB는 롯데캐피탈 인수를 위한 예비입찰에 참여하는 등 M&A를 통해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

장사를 잘 한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쉬은 점도 있다. 조 회장과 윤 회장 모두 ‘3조 클럽’의 샴페인을 터뜨렸지만, 결국 1등 공신은 은행의 이자놀이다. 부동산 관련 대출이 증가하고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이 커지면서 이자 수익이 크게 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예금(1.40%)과 대출(3.71%)의 금리차는 2.31%포인트로 5년 만에 가장 컸다. 이에 따라 신한과 KB를 포함해 4대 금융그룹은 가만히 앉아서 이자수익으로만 28조7734억원을 챙겼다. 전년보다 9.0%(2조3722억원) 늘었다.

사상 최대 실적에도 두 CEO는 올해 걱정이 앞선다. 상황이 만만치 않다. 정부의 강력 규제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인데다 경기둔화로 중소기업·자영업자 대출은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거기에다 금융당국은 오는 7월부터 새로운 대출기준금리(잔액기준 코픽스)를 통해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죽겠다고 아우성만 치지 말고 서민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조치에 기꺼이 힘을 보탠다면, 아름다운 호랑이와 용이 될 수 있다. 조 회장과 윤 회장이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 할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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