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한진그룹이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KCGI(일명 강성부 펀드)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이기로 한 가운데 중장기 비전에 담긴 조양호 한진그룹 일가의 진짜 속내는 무엇인지 증권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 회장이 경영권 방어라는 원래 목적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KCGI에 ‘생색내기’ 식의 양보안을 제시하면서 결국 명분과 실리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고 평가했다. 지배구조위원회 설치, 전자투표제 도입 등 조 회장 일가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사안들은 최대한 제쳐둔 채 "우리는 어느 정도 양보했으니 KCGI도 이제 손을 떼라"라는 암묵적인 압박이 담겨있다는 분석이다.


◇ 주주가치 제고 호재에 한진칼우 등 ‘들썩’

한진칼우는 14일 장중 30%까지 급등했다.


한진그룹이 중장기 비전을 발표하자 14일 계열사들 주가는 일제히 강세를 보였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한진칼우는 전일 대비 8.5% 오른 1만8450원에 마감했다. 대한항공우(4.18%), 한국공항(4.12%), 대한항공(3.2%), 진에어(0.7%) 등 다른 계열사도 상승세를 탔다.


◇ "지배구조위 설치-전자투표제 도입 NO" 경영권 방어 안간힘

한진그룹이 전일 발표한 ‘비전 2023’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지배구조위원회 설치 등 조 회장 일가의 경영권에 위협이 될 만한 요소에 대해서는 침묵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KCGI의 요구안 가운데 주가를 올릴 수 있을 만한 방안들을 골라 중재안을 내놓는 동시에 더 이상 조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하지 말라는 압박이 담겼다는 평가다.

한진칼과 한진의 2대 주주인 KCGI는 지난달 한진그룹에 주주가치 관련 중대 현안을 검토, 심의할 ‘지배구조위원회’와 임원평가 기구인 ‘보상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요구했다. 또 범법을 저지르거나 회사 평판을 실추시킨 자를 임원으로 취임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주주들의 주총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전자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한진그룹은 이같은 요구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 채 감사위원회 설치와 사외이사 인원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의 중재안을 제시했다. 감사를 선임하면 최대주주만 의결권이 3%로 묶이는데 감사위원회를 구성해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는 모든 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 즉 한진칼 지분 28.7%를 보유한 조 회장 일가나 KCGI(10.81%), 국민연금(6.7%) 등 모든 주주들의 의결권이 지분과 상관없이 3%로 묶이게 돼 감사 선임을 위한 표 대결에서 조 회장에 유리한 구조가 됐다. 

한진그룹 비전 2023 주요 내용.


특히 한진그룹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전자투표제를 도입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만일 한진그룹이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면 3월 정기주총서 소액주주들의 의결권 행사가 활발해지면서 KCGI와의 표 싸움에서도 조 회장 일가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한진그룹 입장에서는 소액주주들이 의결권을 최대한 포기해야만 KCGI와의 표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다"며 "자신들의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전자투표제를 도입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한진칼의 배당성향을 50% 수준까지 확대하기로 한 것도 ‘생색내기용’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진칼의 배당성향은 2017년 별도 기준 31.3%였다. 당시 한진칼은 당기순이익 239억원을 올렸고 이 중 75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아직 2018년 별도 실적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당기순이익은 약 300억원 초반대로 지난해와 비슷할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 있다. 여기에 50%인 155억원을 배당한다고 가정하면 주당배당금(DPS)는 250~300원, 시가배당률은 0.9~1.1% 내외로 미미한 수준이다. 또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이미 한진그룹 내부적으로는 지난해 순이익에 대한 집계가 끝났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주주가치 제고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진정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중시하려고 했다면 2018년이 아닌 2019년 배당성향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진그룹 관계자는 "전자투표제 도입 여부는 이사회 논의 사항이 아니므로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며 "결국 객관적인 건 시장의 반응으로, 주가가 강세를 보인 걸로 봐서는 주주들한테도 (회사 측의) 긍정적인 메시지가 잘 전달된 것 같다"고 밝혔다.


◇ "KCGI 소기의 성과...주주행동주의 확산될 것"

전문가들은 앞으로 한진그룹의 사례를 계기로 주주행동주의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진그룹이 이같은 안을 내놓은 것만으로 KCGI는 주주행동주의의 첫 승리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송치호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투자자들은 한진그룹이 발표한 전략 방향들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모니터링하면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은 한진그룹 입장에서는 앞으로도 기업이 스스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한진그룹 경영진도 경영참여 목적을 가진 KCGI의 등장을 계기로 주주가치를 제고함으로써 주주들의 지지를 확보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 것으로 판단한다"며 "주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한진그룹 경영진과 KCGI측의 경쟁은 대한항공을 비롯한 계열사들 주주가치를 향상시킬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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